무영탑 - 072

"아사달님!"
아사녀는 허둥지둥 마주 달려나가며 그 검은 그림자를 향하여 부르짖었다.
"응, 응."
그 검은 그림자는 고개를 수그리고 옷에 먼지를 툭툭 털며 웅얼웅얼 대답을 한다.
"아사달님!"
아사녀는 또 한번 부르짖고 회오리바람처럼 그리고 그리던 남편의 가슴패기에 몸을 던지려 하였다. 그 순간 검은 그림자는 슬쩍 몸뚱이를 모로 돌리고 왼팔을 꾸부정하게 들어 옆으로 어색하게 아사녀를 껴안으며 오른손으로 눌러쓴 벙거지 차양을 밑으로 잡아늘이었다.
"객지에 고생이 오죽하셨을까."
하고 아사녀는 두 팔로 남편의 등과 배를 얼싸안으며 그 겨드랑이에 얼굴을 비비대고 복받쳐 나오는 울음을 걷잡을 수 없었다.
남편은 너무 억색하여 말을 이루지 못하는 듯,
"응, 응."
역시 코대답만 하고 아내를 안은 팔뚝에도 정겨운 힘다리 하나 없었다. 매우 난처나 한 것같이 엉거주춤하고 서 있을 뿐. 아내는 한참 만에야 샘솟듯 하는 눈물을 가까스로 거두고,
"그래 대공은 다 마치셨어요."
가장 먼저 알고 싶은 말부터 묻고 갸웃이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래, 그래."
남편의 대답은 또한 자세치 않았다.
촛불빛이 약하여 워낙 마루까지는 흘러나오지 않았고, 더구나 모로 선 까닭에 귀밑 언저리만 으렷이 보일 따름이었다.
'삼 년 동안에 변하기도 무척 변하였구나.'
아사녀는 마음 그윽이 놀랐다.
밤눈에나마 목덜미와 귀의 모양까지 변한 듯하였다. 그렇다면 제 팔 안에 든 등과 배도 떠날 때와는 딴판으로 두툼하게 살이 오른 것을 느끼었다.
더구나 그 음성조차 못 알아듣도록 달라졌다. 그 상냥하고 부드러운 목청은 어디로 가고, 몇 마디 들어 보지는 못했지만 어쩐지 꺽꺽하게 쉬어진 것 같다. 서라벌 사투리가 우락부락하다더니 그새에 사투리가 목소리에까지 젖고 말았는가.
"내가 왜 이러고만 있을까. 오죽이나 다리가 아프실라구. 어서 방으로 들어가세요."
하고 아사녀는 남편의 겨드랑이에 댄 이마를 떼었다.
그럴 겨를도 없이 그 검은 그림자는 얼른 제가 앞장을 서며 팔을 뒤로 돌려 아사녀를 옆에 끼고 어구적어구적 걸었다. 한번 잡은 아내를 놓칠까 보아 두리는 듯.
아내는 뒤에서 남편이 방문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에구머니나, 키도 작아졌네.'
혼잣속으로 속살거렸다.
'몸이 난 까닭에 키까지 달라붙어 보이는가.'
방 안에 들어선 남편은 아랫목으로 아니 가고 웃목 촉대 앞으로 먼저 갔다.
내젓는 손이 얼진 하고 불 위를 스치는 듯하였다. 그 마디가 굵은 뭉툭한 손가락이 환하게 아사녀의 눈에 뜨이자마자 갑자기 촛불은 탁 꺼지고 말았다.
"왜 불을 꺼요."
아사녀는 기겁을 하였다.
"손길에……."
그 검은 그림자는 황급히 변명을 하였다.
"그러면 석유황 개피를 찾아야."
하고 아사녀는 끼인 몸을 재빠르게 빼어 석유황 개피를 얹어 둔 문틀 위를 더듬더듬 찾는데 별안간 그의 가슴은 두방망이질을 하고 손이 사시나무 떨듯 하였다.
아니나다를까, 그 검은 그림자는 등뒤에서 다짜고짜로 아사녀를 부둥켜안으려 하였다.
아사녀는 선뜩 몸을 빼쳤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그 억센 오른손 아귀에 아사녀의 왼 손목이 붙잡히고 말았다. 아사녀는 손을 뿌리치려고 바둥거리며,
"누구요, 누구요."
소리를 질렀다.
"내다, 내다."
그 검은 그림자도 허청거렸다.
"내가 누구란 말이오. 내란 누구야."
"나를 몰라, 나를 몰라."
"몰라요, 몰라."
돌변한 아사녀의 태도에 검은 그리자도 화증을 더럭 내었다.
"아사달을 몰라."
내던지듯 한마디하고 잡힌 손을 으스러지도록 쥐어 낚아챘다.
"아야야, 아니야, 아사달이 아니야."
아사녀는 휘둘리어 쓰러지려는 몸을 간신히 버티며 외쳤다.
"아니면 어떻고 기면 어떠냐."
마침내 검은 그림자가 거짓탈을 벗어 버리고 제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어 다시 한번 휘술레를 돌리는 바람에 아사녀의 갸날픈 몸은 허깨비같이 자빠졌다.
어두운 가운데도 아사녀는 그 검은 그림자가 뒤덮는 듯이 제 몸 위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사람 살리우, 사람 살리우."
아사녀는 바윗덩이에 지질린 것 같은 제 몸을 버르적거리며 악을 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