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해도 떨어졌건만 아사녀의 바라고 기다리던 보람도 없이 아사달은 영영 그림자를 나타내지 않았다.
저녁이 되었다. 온 하루를 속았건만 또다시 남편의 저녁밥을 떴다.
암만해도 마음이 키인다.
이대도록 마음이 키이기는 갈린 지 삼 년 만에 처음인 양 싶었다. 세상없어도 오늘 밤에는 들이닥치고야 말 것 같다. 하필 오늘 제비가 날아오고 아침밥 뜨는 것을 보고 삽사리가 꼬리를 흔들며 좋아라고 뛰던 것이 심상할 까닭이 없다.
온다, 온다. 아사달은 분명히 온다.
어둑한 밤길을 재촉하며 허위허위 걷는 아사달의 모양이 자꾸만 눈에 밟히었다.
어디만큼 오시는가. 방장 숫재를 넘어서시는가.
"입때 숫재를 넘어서야 될 말인가. 그야말로 오밤중에나 들어오시게."
아사녀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숫재는 오늘 낮에 넘어섰으리라. 도적놈이 덕시글덕시글한다는 그 험한 재를 이 밤에 넘으실 리 만무하다. 하마 고란사 앞을 지나시는지 모르리라. 벌써 버드나뭇골 여울을 건너 우리 마을 골목으로 휘어잡아 드신지 모르리라…….
장사 지내고 남은 초로 불까지 환하게 켜놓고 아사녀는 턱없는 공상에 잦아졌다.
오늘 밤따라 삽사리도 철이 났는지 수선도 피지 않고 허청으로 짖지도 않는다. 비록 미물일망정 제 주인의 발자취 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쫑긋거리고 있는지 모른다.
아사녀는 웃목에 묻어 놓은 밥그릇을 몇 번을 다독거리고 몇 번을 만져 보며 귀에 정신을 모으고만 있었다.
어젯밤에 잠을 설친 탓인지 또는 외곬으로 정신을 모은 탓인지 이내 꾸벅꾸벅 졸며 쓰러졌다. 손으로 밥그릇을 부둥켜쥔 채로.
얼마 만에 아사녀는 번쩍 눈을 뜨고 질겁을 하며 일어났다.
'분명히 아사달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틈에 잠이 들었는가.'
속으로 속살거리고 아무도 없는 방 안을 휘 둘러보며 무안한 듯이 해죽이 웃었다.
잠을 깨려 하면 할수록 게으름이 길길이 나고 두 눈은 졸아붙는다.
'사립문을 단단히 걸어 두었는데 만일 내가 깜박 잠이 들어 정작 아사달님이 돌아오시어 문을 뚜다려도 모르면 어떡하나.'
졸린 중에도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그는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그는 문간으로 나갔다. 잠 오는 품이 암만해도 한번 잠이 들면 좀처럼 깨어날 것 같지 않다. 차라리 자물쇠를 열고 문고리를 벗겨 두는 것이 나을 성싶었다.
자물쇠를 열어 가지고 들어와 보니 또 허수해서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문을 열어 놓다시피 하고 홀로 자다가 무슨 변이 정말 생기면 그야말로 큰일이 아닌가.
자물쇠를 쥐고 한참 망단해하다가 마침내 다시 나가서 채우고 들어왔다.
'잔뜩 정신만 차리고 잔다면야 설마 그렇게 잠귀가 어두울까.'
사면이 솔가지로 되는 대로 막아 놓은 엉성한 울타리지만 사립문이라도 잠가 놓으니 아까 열어 놓은 때보담 한결 든든하였다.
그 대신 밤마다 닫아걸던 방문 단속을 그는 잊어버리고 말았다.
꼬끼요, 어디선지 첫닭이 운다.
"닭이 울어도 안 오시네."
그는 소리를 내어 종알거렸으나 반은 잠꼬대였다.
잠을 설자리라 하고 여러 번 마음에 새기었지만 변으로 고단한 잠은 요도 안 깔고 쓰러진 그의 몸에 나른하게 퍼지었다.
앞뒤 정전을 돌며 캥캥 하고 사나웁게 짖는 삽사리 소리를 듣고 잠결에도,
'인제야 아사달님이 오시는가 보다.'
생각을 하고,
"요개, 요개."
하며 손까지 내저었으나 꼬박꼬박 오는 잠은 쉽사리 물러서지를 않았다.
뒤꼍에서 버석버석 울타리 뜯는 소리가 나고, '쉬쉬' 하며 개를 으르는 인기척까지 어렴풋이 들렸으나 잠은 막무가내로 퍼붓는다.
'아사달님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번쩍 들며 아사녀가 질겁을 하고 일어날 때는 사푼사푼 하는 발자국 소리가 이미 앞으로 돌았다.
천방지축으로 방문을 열고 나선 얼떨떨한 아사녀의 눈에 웬 검은 그림자가 성큼 하고 마루에 올라서는 것이 보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