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070

제절제절 제비가 지저귀는 소리에 아사녀는 잠이 깨었다.
가뜩이나 수수산란한 심사가 장달과 웃보의 사단으로 말미암아 더욱 어지러워져서 한 경만 자고 나면 도무지 잠이 오지를 않았다.
아사달이 집에 있고 아버지 생전에는 누가 동여 가도 모르던 잠이었다. 그러던 것이 남편이 떠나면서 잠마저 가져간 듯, 난생 겪어 보지 못한 잠 안 오는 밤이 이따금 그를 찾게 되었다.
첫 이별의 쓰라린 맛도 견디기 어려운데 소태 같은 불면증까지 그를 괴롭게 할 줄이야. 그러나 그것도 한해 두해가 지나가자 고달프고 고소한 잠이 다시 애젊은 그를 찾아왔더니만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시매 슬픔과 설움도 둘째 셋째요, 첫째 휘젓하고 무서운 증이 나서 또다시 잠을 이루려야 이룰 수 없었다. 금방 들다가 금방 깨고 코 한번 옳게 못 골아 보고 훤하니 밝는 수도 항다반 있게 되었다.
더구나 아찔은 삽사리가 허덕대고 짖는 것이었다. 그 컹컹 소리만 들으면 아사녀는 질겁을 하고 일어앉았다. 간이 콩만해지고 가슴은 까닭 없이 뚝딱거린다.
'누가 오나!'
이런 생각을 하면 괜히 머리끝이 쭈뼛해지고 마음이 오마조마하였다. 햇구멍 막히기가 무섭게 닫아걸었지만 문새들이나 잘 걸려졌는지 방 안을 두리번두리번 살피기도 하였다.
'혹시 아사달님이 오시나.'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 아무리 무서워도 기어코 방문을 바시시 열어 보아야 직성이 풀리었다.
텅 빈 뜰에 달그림자만 어른거릴 때도 있고, 또는 바람이 일렁일렁 불어 일기도 하였다. 어느 때는 캄캄한 밤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데 개는 이리 오르르 저리 오르르 뛰어다니며 세차게 짖었다. 하도 여러 번 속아서 인제 개 짖는 소리도 시들해지고 혼자 자는 데 단련이 되어 어찌하면 잠도 곧잘 오게 된 판에 그 지긋지긋한 사단이 벌어졌다.
이럴까 저럴까, 천 가지 만 가지 사려에 어젯밤도 고스란히 밝혔다가 새벽녘에야 잠깐 눈을 붙인 것이 해가 돋도록 지나쳐 자고야 만 것이다.
방문을 열고 나와 보매, 제비 두 마리가 빨랫줄 위에 납신 올라앉아서 추녀 끝을 쳐다보며 고 어여쁜 대가리를 갑신거리며 연상 재잘거린다. 햇빛을 담속 안고 그 흰 뱃바닥과 남빛 날개는 윤이 자르르 흐른다.
아사녀는 가벼운 하품을 한번 하고, 고 혀를 돌돌 말아 붙이고 꽈리를 불어 터뜨리는 듯한 소리를 어느 때까지 듣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움트기 시작한 '봄'은 벌써 활짝 피었다.
'제비도 옛 집을 찾아오는데.'
아사녀는 날짝지근한 몸에 기지개를 한바탕 늘어지게 켜면서 혼자 생각하였다.
아사달은 웬일일까. 늦잡아도 이태면 이룩될 탑이거늘 어째 입때 오지를 않는가. 올 때 지난 지가 벌써 오래이거든 어째 온다는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가.
오늘따라 아사녀는 아사달의 생각이 더욱 간절하였다. 아침 저녁 밤과 낮으로 문득문득 생각 안 나는 것이 아니지만 인제 기다리기에도 지치어서 처음 모양으로 뼈끝이 저리도록 기다려지지는 아니하였다. 더구나 요새 와서는 제자들이 들고 나고 엄벙덤벙하는 바람에 마음놓고 아사달 생각조차 못 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제비가 온 것을 보자 심청이 나도록 아사달이가 그리웠다.
'제비도 왔으니 그도 오려나.'
불현듯 이런 예감이 그의 뒤숭숭한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도 오늘은 꼭 올 거야, 꼭 올 거야.'
마침내 스스로 단정을 해버리었다. 세상없어도 오늘이란 오늘은 아사달이가 터덜거리고 들이닥치고야 말 것 같았다.
금시로 들어설 듯 들어설 듯하여 사립문을 내다보고 또 내다보았다.
"어서 밥을 지어 놓아야."
그는 부리나케 물을 긷고 쌀을 씻어 밥을 지었다. 밥솥에 불을 지피면서도 몇 번을 내다보곤 하였다.
밥을 다 지어 놓고 아사달의 몫으로 밥 한 그릇을 떴다.
삽사리도 주인의 뜻을 아는지 그 몽탕한 꼬리를 흔들며 앞발을 들어 치맛단 위에 깡충깡충 뛰어올랐다.
"너도 서방님이 오늘 오실 줄 아니."
하고 아사녀는 그 숱 많은 대강이를 어루만져 주었다.
오래간만에 차려 놓은 겸상! 밥 한 그릇 더 올려놓은 것만 보아도 휑뎅그레한 집 안이 그득히 차는 듯하였다.
밥상을 차려다 놓고 행길에 나와서 서울길을 눈이 빠지도록 바라보았다.
"내가 미쳤나."
다시 들어와 숟가락을 들었으나 목이 메어 밥이 넘어가지를 않았다.
"설마 오늘 해 안으로야."
그래도 아사녀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