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069

기다리고 기다리던 팽개는 그날 다 저녁때나 되어서 매우 침통한 얼굴찌로 나타났다.
아사녀는 반색을 하며 일어나 마루 끝까지 나와 맞았다.
"어서 오세요, 올라오세요."
그러나 팽개는 그 말에는 대답도 하지를 않고 석고대죄나 할 사람 모양으로 두 손길을 마주잡고 허리를 구부리고 선 채 이윽히 말이 없다.
지금까지 시끌덤벙하던 뭇 아가리들도 자갈 먹은 말처럼 쭉 닫혀지고 말았다. 나이 탓도 탓이려니와 워낙 얻어먹은 것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팽개라면 꿈쩍도 못 하였다. 더구나 오늘같이 된 소리 안 된 소리 떠들고 있다가 팽개의 엄숙한 거동을 보매 더욱 찔끔을 한 것이었다.
한참 만에야 팽개는 무거운 입을 열었다.
"아주머님 세상에 그런 변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죽이나 놀라셨을까. 모든 것이 내 불찰입니다. 그런 놈들을 단속을 못 한 내 잘못입니다. 무슨 낯으로 아주머님을 뵈올까."
"왜 팽개님 탓이에요, 왜 팽개님 탓이에요."
하고 아사녀는 억색하여 한 말을 되풀이하며 무에라고 뒤끝을 맺을지 몰랐다. 장달과 웃보의 싸움도 싸움이려니와 그 싸움으로 말미암아 해괴한 소문이 나서 차마 입에도 못 담을 소리를 들은 것이 더욱 분하고 원통하였다. 그렇다고 싸움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이러한 것은 생판 헛소문이라고 변명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더러운 말을 어찌 입결엔들 올릴 수 있으랴. 그는 오라비 겸 아버지 같은 팽개에게 매어달려 실컷 마음껏 울고 싶었다.
"그런 짐승만도 못한 놈들. 스승의 따님이면 저희에게도 누님이 되려든. 그러니 그런 해참한 일들이 어디 있단 말씀입니까."
"오라버님!"
아사녀는 한번 힘있게 불렀다.
"그러면 오라버님도 그 터무니없는 소문을 믿으십니까."
아사녀는 그 자리에 엎어져 울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팽개는 제 말이 조금 지나친 것을 깨닫고 당장에 돌려 대었다.
"내가 왜 그 종작없는 소문이야 믿겠습니까. 그놈들도 설마 사람인데 그런 일이야 있겠습니까. 내 말은 그놈들이 아주머님께 어쩌고저쩌고 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아주머님 앞에서 말다툼인들 왜 하느냐 말입니다. 더구나 치고 받고 하다니 그런 해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팽개는 십년공부가 나무아미타불로 돌아갈 것을 염려하는 사람으로 뿌옇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우리 아주머님 앞에 언감생심인들 그놈들이 그럴 리야 만무하고 말고, 만무하고말고. 내가 미쳤다고 그런 소문을 꿈엔들 믿겠습니까."
얼락녹을락하는 제 변명에 아사녀가 솔깃해지는 눈치를 차리자 팽개는 슬쩍 싹불을 보고 눈짓을 하고 나서,
"다들 사랑으로 나가!"
불호령을 내리며 눈으로 휘몰아 내듯이 좌중을 부라리었다.
싹불이가 무엇에 튕기는 듯이 발딱 일어나 서며,
"자,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떠들고 있을 게 아니라 일어서 나가세."
하고 제가 먼저 마루에서 내려선다. 여러 제자들도 쭉 따라 일어서는 수밖에 없었다.
팽개의 일령지하에 찍소리도 못 하고 움직이는 광경이 아사녀의 눈에 팽개를 여러 곱 돋보이게 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으리라.
장사를 치르고 난 뒤에 묵혀 둔 사랑에는 먼지가 켜켜이 앉았다.
싹불은 앞장을 서서 비를 들고 나가서 부산하게 쓰레질을 하였다.
팽개의 명령으로 장달과 웃보도 불리어 왔다. 당사자 둘을 대면을 시키고 그 괴변을 듣자는 것이었다.
여러 제자들은 그 두 사람을 치훑고 내리훑어 보았으나 장달의 턱도 그대로 붙어 있고 웃보의 갈비뼈가 부러졌다는 것도 새빨간 거짓말인 듯하였다.
팽개의 문초에 그들은 서로 손찌검을 저편에서 먼저 하였다고 빡빡 세우며 끝장이 나지 않았다.
"너희놈들끼리 손을 먼저 대고 나중 댄 것은 여벌문제다. 아사녀에게 손을 먼저 댄 놈이 어느 놈이냐."
팽개는 원님보담 더 무섭게 호령하였다.
"어느 놈이냐, 어느 놈이야."
몇몇 제자들도 목에 핏대를 올리며 부르짖었다. 기실 두 놈이 싸운 것보담 이 문제가 그들에게 가장 크고 가장 흥미가 있었던 것이다.
"누가 아사녀에게 손을 대어?"
장달은 무슨 영문인 줄도 모른다는 듯이 도로 묻는다.
"이놈, 웃보, 너는."
"이 키다리가 아사녀 듣는 데서 내가 술청 갈보를 호려 내었다고 해서……."
"이놈아 누가 술청 갈보 말이냐, 아사녀 말이지."
"그놈 멀쩡한 놈, 왜 갈보 얘기를 끄집어낼까."
"그래 이놈아, 네 눈은 아사녀가 갈보로 보이더냐."
"그놈 혓바닥을 끊어 놓아라."
여럿이 욱대기는 바람에 웃보는 얼굴이 노래지고 변명 한마디 못 하였다.
아무튼 두 놈이 다 같은 놈이니 이후로는 스승의 문전에는 발그림자도 못 하도록 결말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