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종은 여러 제자들의 운력으로 어렵지 않게 치를 수 있었다. 그 중에도 가려운 데 손이 닿도록 오밀조밀한 팽개의 힘이 더욱 크고도 곰살궂었다.
얼른 보기에 덜렁하고도 투미할 듯하던 그가 큰일을 당하매 이대도록 차근차근하고 자상스러울 줄은 정말 생각 밖이었다.
그는 아사녀가 입을 상복의 치수까지 아는 듯하였다. 어느 때 어떤 절차로 절을 하고 곡을 하는 것까지 또박또박이 알리었다. 제수에 드는 것은 하나도 빼어놓지 않을 뿐인가, 고기가 얼마 생선이 얼마, 심지어 여러 가지 과실 갯수까지 남고 모자라는 것이 없도록 분별해서 사들이었다.
그러고 상청에 들어서면 어느 제자보담 가장 섧게 울었다. 울음이 끝난 뒤에 여러 제자들은 아사녀를 위로하는 척하고 둘러앉아서 지싯지싯 실없는 수작도 더러는 꺼내었지만, 그는 제 할 일만 끝나면 선선히 일어서서 사랑으로 나가 버렸다.
그의 아사녀에 대한 태도는 너무 점잖아서 오히려 데면데면한 편이었다.
장달과 싹불 같은 다른 제자들은 아사녀와 말 한번 주고받을 기회만 있으면 할 말을 다 하고 난 뒤에도 딴청을 부리고 수작을 질질 끌려 하였다. 그러나 절차를 어떻게 할 것과 흥정을 어떻게 할 것 등으로 아사녀와 접촉할 기회가 가장 많은 팽개는 단 한두 마디로 일을 처리할 뿐, 아사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버지마저 여의고 홀로 남은 아사녀, 의지할 곳 없는 아사녀, 홀아비의 손엘망정 귀히 고이 자라나고 풍파란 겪어 보지 못한 아사녀, 아직도 나이 스물셋! 세상 물정을 모르는 그는 팽개의 이 행동이 어떻게 고마운지 몰랐다. 어떻게 든든한지 몰랐다.
슬픔과 설움이 겹겹이 쌓인 중에도 날과 달은 흘렀다.
엉덩둥 장사도 지났다. 닥쳐오는 하루하루, 휘젓하고 무서운 하루하루가 한달 두달이 되었다.
장달, 작지, 싹불, 웃보는 번차례로 혼자 오고 둘이 오고 대들고 대나며 아사녀를 찾아 주었다. 외로운 그이거니 그들의 오는 것이 반갑지 않음이 아니지만 그 눈치와 말투들이 괴란쩍을 때가 많았다. 걸핏하면 싸움판도 벌어지기도 하였다.
하루는 꼭두식전에 장달이가 그 기다란 키를 휘영휘영 흔들며 들어오다가 먼저 와 앉아 있는 웃보를 보고,
"요 녀석이 어느 틈에 벌써 왔어. 새침데기 골로 빠진다고."
"왜 못 올 데 왔단 말이냐."
"요 녀석이 왜 새벽 대령을 하고. 무슨 자갑스러운 짓을 또 저지르려고."
장달은 그 멍청이 같은 눈알을 디굴디굴 굴린다.
"이 싱거운 키다리가 못 할 말이 없네. 그건 어따 하는 수작이야. 이 기급절사를 할 놈아."
"그러면 왜 왔어, 왔어."
"너는 왜 왔니. 그 짤막한 키를 질질 끌고, 맙시사."
하고 웃보는 아사녀를 향해 웃어 보이었다.
"요 녀석이 살살 눈웃음을 치고 간지럽게. 아사녀님이 아무리 한들 너 따위에 넘어갈 줄 아느냐."
"왜 아사녀님이 무동이라 재주를 넘느냐. 넘어가시게, 하하."
웃보는 제 재담에 만족한 듯이 또 한번 웃어 보이었다.
"요 녀석이 칠월 열중이 모양으로 입만 까가지고."
"너는 입을 안 까고 그 황새 같은 다리부터 먼저 깠니, 킥킥."
"요 녀석이 또 웃어. 요 녀석아, 네가 그 웃음으로 건너마을 술청 갈보는 호려 내었지만도……."
"이 얼간망둥이 같은 녀석을 그대로 내버려두니까……."
웃보는 눈살을 꼿꼿이 세우더니만 대번에 장달의 따귀를 갈기었다.
장달이 화다닥 일어서자 웃보도 발딱 몸을 일으켰다. 장달은 그 휘청휘청하는 긴 팔을 늘이어 웃보의 멱살을 잡았다. 웃보는 그 턱밑에서 뺑뺑 돌며 그 작달막한 다리로 후당퉁탕 장달의 허벅지를 차느라고 애를 썼다. 장달은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웃보를 휘술레를 돌리었다. 웃보는 깡충 몸을 솟구치듯 하더니 그 여무진 대가리로 장달의 턱을 냅다 받았다.
"아야야!"
장달은 비명을 치고 멱살을 놓자 이번에는 웃보의 허둥거리는 다리가 정통으로 허벅지를 내리지르고 작으나마 세찬 주먹이 장달의 앙가슴을 쥐어질렀다.
"헉!"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장달은 그 꾸부정한 등을 훨신 펴는 듯하더니 그대로 털썩 하고 나동그라졌다.
"이를 어째, 이를 어째."
아사녀는 쩔쩔매며 자빠진 장달에게로 또 달려들려는 웃보의 팔뚝에 매어달렸다.
"놓아 주세요, 놓아 주세요."
"이런 놈은 버릇을 단단히 가르쳐 놓아야."
웃보는 무엇이 그리 분한지 어깻숨을 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