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은 자기가 염려하던 바와 같이 그 봄이 채 다 못 와서 썩은 나무가 물오르기 전에 부러지듯이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 며칠은 제법 정신기가 돌아났다. 시늉만 보이던 그 악착한 기침도 도수가 줄어진 것 같고 담끓는 소리도 한결 나은 듯하였다.
하루 아침은 물을 길러 나가려는 아사녀를 눈으로 불렀다. 곁에 와 앉은 딸을 퀭한 눈으로 치어다보며 자꾸 안간힘을 쓴다.
"아버지, 아버지 왜 이러셔요."
팔뚝 전체로 방바닥을 짚고 모로 다리를 꼬는 병인을 보고 아사녀는 또 무슨 변이 생기는가 하고 질겁을 하며 부르짖었다.
"왜 이러셔요, 아버지. 글쎄 아버지 가만히 좀 누워 계셔요."
그래도 병자는 부진부진 혼자 애를 쓰다가,
"이, 일으켜. 나를 좀 일으켜."
하고 버르적거린다.
"어유 큰일나게. 안 됩니다, 안 돼요. 몸을 움직이시면 또 그 몹쓸 기침이 나게요."
아사녀는 질색을 하였다.
"아 딸아, 아사녀야. 나, 나를 좀 일으켜 다오, 후, 후."
한참 기를 쓴 탓에 지쳤던지 숨을 모두 꾸려 쉬며 마치 애원이나 하는 것 같다.
"숨길이 이렇게 가쁘신데 일어나셨다가 덧치시면 어떡하게, 어떡하게."
"누웠으니 답답해, 어유 답답해. 이, 일으켜라, 일으켜, 좀."
"글쎄 안 됩니다, 안 돼요. 병환이……."
"병은 인제 다 나았다. 나를 일으켜라, 응. 아가, 아가."
비대발괄이나 하는 것 같다. 이 안타까운 청을 아니 들으려야 안 들을 수 없었다.
아사녀는 두 손을 병자의 등 밑으로 넣었다. 손에 만져지는 아버지의 살은 마치 물기 도는 바위와 같이 엄청나게 무섭고 미끈거렸다.
아사녀는 제 팔이 천근들이 쇳덩이나 얹힌 것처럼 휘어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 아버지는 뜻밖에도 거뿐하게 일어앉는다.
아사녀는 병자가 쓰러지지 않도록 이불을 둘레둘레 모아 앞과 양옆을 두리꺼리고 뒤에는 안석삼아 두둑하게 괴었다.
아니나다를까, 아버지는 일어앉기가 무섭게 한바탕 된통 기침을 하였으나 그 몹쓸 고통도 잊은 듯 그 눈물이 펑한 눈으로 웃어 보이었다.
오래간만에도 그 엉덩그려 붙인 얼굴을 펴는 웃음살!
한번 일어나 보시는 것을 이렇듯 신기해하시고 기뻐하실 줄이야! 그런 줄 알았더면 진작 일으켜 드릴 것을!
아사녀도 눈물겨웁도록 그 웃음이 반가웠다. 하마터면 깨어질 듯하던 제 환상이 그대로 들어맞은 것이 어떻게나 기쁜지 몰랐다.
봄이 온다! 강물도 풀리고 아버지의 얼굴에도 봄이 온다.
그날 아침에는 물을 길으면서 저도 모르게 콧노래까지 옹알거리었다.
강물은 엊저녁보담 몰라보리만큼 더 풀리었다. 도끼로 찍어도 깨어지지 않을 성싶던 그 두껍고 튼튼하던 얼음장이 둥둥 떠서 헤실헤실 녹으며 흘러간다. 아직 덜 풀린 얼음장 위에도 덧물이 져서 콸콸 소리를 치며 오는 봄을 그리는 것 같다.
그날 저녁에 아버지는 밥을 달라고 떼를 썼다. 미음도 잘 못 넘기던 어른이 죽도 마다하고 밥을 먹겠다는 데는 아사녀도 기가 막히었다. 부녀간에 얼마를 승강이를 하다가 끝끝내 밥을 반 주발이나 말아서 자시었다. 매우 염려를 하였지만, 그날 밤에 배탈도 나지 않았다.
그 이튿날 아침에는 아사녀가 채 눈도 뜨기 전에 병자는 제 혼자힘으로 일어앉고 말았다.
"어떻게 혼자 일어나셨습니까."
아사녀는 하도 신통해서 웃으며 물었다.
"왜 내 혼자는 못 일어난다더냐."
하고 아버지는 웬일인지 웃지를 않았다. 또 무엇에 역정이 난 것 같았다.
"쌀이 얼마나 남았느냐."
아버지는 불쑥 이런 말을 물었다.
"입쌀은 한 댓 되밖에 안 남았어요."
"그러고 좁쌀은?"
"저번에 팽개님이 팔아 온 것 서 말은 남았을까."
"팽개, 팽개가 좁쌀을 팔아 와."
매우 불쾌한 눈치를 보이다가 땔나무는 누가 해오느냐, 내 옷은 몇 벌이나 되느냐, 너는 봄이 되어도 입을 옷이 있느냐, 내가 잘 장식해 두라던 돌 다루는 기구는 다 어찌 하였느냐, 갖은 것을 미주알고주알 파고 캐며 챙기었다.
그날 해가 어슬어슬해지자 아버지는 오한이 든다고 이불을 덮어도 또 덮으라 하였다.
며칠 뻔한 탓에 마음을 놓았던 아사녀는 더욱 허둥지둥하였다.
밤중이 되자 아사녀의 눈에도 아버지의 얼굴빛이 아주 달라지는 듯하였다.
"아버지, 아버지, 여러 제자들을 불러, 불러오리까."
아사녀는 울며 부르짖었다. 병자는 손을 내어젓고 무슨 말인지 입만 달싹달싹한다.
"네, 아버지, 네, 아버지."
딸은 아버지의 입에 귀를 대었다. 병자는 차오르는 숨길 가운데 낱도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아, 아, 사달."
이것이 마지막 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