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064

그 이듬해는 여름이 되어도 몹시 지친 부석의 몸은 좀처럼 소복을 못 하고 호정출입까지 어렵게 되었다.
위험시절 가을은 또 닥쳐왔다. 혹독한 기침은 썩은 나뭇가지를 분질러 내듯 쇠약한 부석의 몸의 모든 부분을 샅샅이 바수어 내었다.
인제 쿨룩쿨룩하는 소리도 제대로 나오지를 않았다. 소리를 낼 만한 근력 한푼 어치도 그에게 남지 않은 모양이었다.
주름살 많이 잡힌 얼굴이 마치 으등그린 송충이처럼 흉업게 찡그려 붙고 입을 딱딱 벌리는 걸로 보아 그가 지금 기침을 하고 있음을 짐작할 따름이었다.
어복이 말라붙은 종아리는 촛대뼈와 종지뼈가 앙상하게 드러나서 하릴없이 장작개비와 같이 뻣뻣하였다.
그가 살아 있다는 오직 한 개의 증거는 가르렁가르렁 씩씩 갖은 소리를 내는 담끓는 것뿐이었다.
금일 금일 하면서도 그의 생명은 기적적으로 끊어지지는 아니하였다.
"아사달을 다시 한번 못 보고 내가 죽다니 말이 되느냐. 안 될 말, 안 될 말."
그는 조금만 정신기가 나면 언제든지 다 부서진 제 몸에 용을 쓰며 중얼거리곤 하였다.
아사녀는 하도 여러 번 그 소리를 들어서 귀가 따가웠다.
이렇게 용을 한번 쓰고 나면 그 흐릿한 눈동자에는 언제든지 눈물이 친친하게 괴어 올랐다.
제 평생을 두고 닦고 배운 재주를 모조리 전장한 아사달, 그의 쓸쓸한 인생에 오직 한 개의 보옥인 딸까지 맡은 아사달.
그가 대공을 마치고 영광에 쌓이어 돌아오는 날까지는 세상없어도 이 쇠잔한 목숨을 지탱을 해야 한다.
그의 잿불처럼 꺼져 가는 생명을 부지하는 기적이 실상은 이 원력인지 모르리라.
아사녀는 이 용쓰는 것과 눈물이 보기 싫었다. 처음에는 그럴 적마다 울기도 여러 번 울었으나 인제 와서는 그 광경을 차마 볼 수 없어 퉁퉁하게 부은 눈을 외우시고 만다. 이렇게도 원을 원을 하시는 것이 암만해도 원을 이루지 못하고 마실 것이 더욱 가슴을 찢어갈기는 듯하였던 것이다.
어찌어찌 그 무서운 겨울을 넘기기는 넘기었다.
추녀 끝에서 눈 녹아 내리는 소리가 또닥또닥 난다. 사자수가 풀리느라고 얼음장이 찡찡 우는 것이 제법 멀리 들려 왔다.
물동이를 이고 강가에 나간 아사녀는 어제 오늘 다르게 얼음이 한뼘 한뼘 녹아 없어지고 그 대신 찰랑찰랑하는 파란 물둘레가 넓어 가는 것이 신통하였다.
바가지로 물 한 동이를 퍼내 놓은 뒤에는 어린애 모양으로 두 손으로 그 수정 같은 물을 움켜 떠보고 손가락 새로 흘려 버리곤 하며 때 가는 줄도 잊었다.
봄이 온다.
아사녀의 염통은 뛴다. 겨우내 그 조그마한 가슴을 엎누르고 지지르던 그 두꺼운 얼음장도 녹아 내려 버린 듯하였다.
봄이 오면 첫째로 아버지의 병환이 돌리시리라. 그 무서운 기침이 차차 도수가 줄어지시리라.
지팡이를 끄으시고 뜰에 내려오시어 양지쪽 봉당에 앉으시게만 되면 그 몹쓸 병은 물러나는 날이다. 재작년도 그러하였고 작년도 그러하였으니 금년이라고 아니 나으실 리가 있으랴. 전보담 너무 지치신 듯한 것이 적이 염려가 되기는 되었지만.
그러고 더 좋기는 아사달님 돌아오실 날이 가까워 온 것이다. 떠나신 후 벌써 세 번째 봄이 돌아오질 않느냐. 아버지 말씀대로 탑 둘을 혼잣손에 다 맡아 짓는다 해도 이태면 된다 하셨으니 이번 봄이 오면 햇수로는 벌써 삼 년 날수로 따져도 고스란히 이태가 되지 않느냐. 설마 세 번째 봄이야 넘기실 리 있으랴. 이번 봄에는 기어이 돌아오시고야 마시리라.
참 세월이 쉽기는 쉽구나. 단 한 달도 단 일 년도 그릴 것을 생각하매 까마득하더니 어느결에 이태 삼 년!
아사녀는 정신을 놓고 물을 움키고 또 움키다가 이른 봄의 강물은 아직도 차서 손이 쓰린 것을 깨닫고 치마꼬리에 손을 씻었다.
"내가 미쳤나. 손이 이렇게 쓰린 것도 모르고……."
아사녀는 해죽이 웃고 치마꼬리에서 빼어 낸 새빨갛게 된 손을 호호 불었다.
다가드는 봄 자취와 함께 그의 집에는 기쁜 일과 좋은 일이 꼬리를 맞물고 한꺼번에 닥쳐오는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