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덩이 같은 주만의 머리와 뺨에 빗발이 젖자 무렁무렁 김이 서리었다.
"나는 아사달님과 부부가 되는 것도 원치 않아요. 그야 어엿한 부부가 될 수가 있을 말로야……."
하다가 주만은 코 안으로 흘러드는 빗물을 풀어 내었다.
"그야 애당초에 안 되기로 정해 놓은 노릇. 저는 차라리 아사달님의 제자가 될 터예요. 겨누와 정을 매만져 드리는 제자가 될 터예요. 십 년을 배우고 이십 년을 배우면 설마 그 놀라우신 재주의 만분지 일이야 못 배울까……."
"이손 댁의 귀동따님이 석수장이의 제자가 되다니 안 될 말씀, 안 될 말씀."
하고 아사달은 고개를 흔든다.
"왜 안 돼요. 안 될 까닭이 무엡니까! 삼단 같은 머리를 끊어 버리고 불제자도 되려든. 나무로 깎고 구리로 새겨 만든 부처님의 제자도 되려든. 살아 있는 이를 왜 스승으로 못 섬길까. 눈앞에 보여 주는 재주를 왜 못 배울까……."
"제발 마음을 돌려 주십시오. 이 아사달이 빕니다."
아사달은 머리를 푹 수그렸다.
"아무리 아사달님이 빌어도 내 마음은 돌리지 못합니다. 동해에서 뜨는 해가 서악(西岳)에서도 떠도 한번 먹은 내 뜻은 꺾지를 못합니다."
"괴롭습니다. 이 아사달이 괴롭습니다. 제발, 제발……."
"괴롭다면 내가 괴롭지 아사달님이야 왜 괴로워요. 여제자 하나 데리는 게 그렇게 괴로워요."
"제발 그러지 말아 주십시오. 부모님께서 정혼하신 자리로 떳떳이 시집을 가주십시오. 그러고 그 좋은 부귀와 영화를 누려 주십시오."
"부귀와 영화가 아무리 좋다 한들 내가 싫은 바에야 헌신짝만도 못한 것……."
"가난뱅이 석수살이. 그 지긋지긋한 고생을 왜 사서 하시려고……."
"아무런 고생살이라도 제가 즐겨 하는 거야 누구를 탓을 해요."
"말씀은 쉬워도 고생살이란 진저리나는 것. 풀자리에 베이불을 어떻게 견디실까. 안 될 말씀, 안 될 말씀!"
"돌 위에 그냥 자도 내 좋으면 그만이지요. 나무껍질을 벗겨 먹어도 내 기쁘면 고만이지요. 아사달님을 그리고는 끊어질 이 목숨. 목숨도 태웠거든 세상에 못 견딜 일이 무에 또 있을까."
바로 머리 위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듯 천지가 뒤집는 울림이 일어났다. 정열의 용솟음에 허덕이는 그들도 아뜩하며 귀를 막았다. 눈에 불이 주렁주렁 흩어지며 세상에도 빠르고 세상에도 세찬 무엇이 홱 지나치는 듯하였다. 팽팽 내어둘리는 눈길에도 저 건너 산허리에 수없는 불바위가 디굴디굴 맞부닥뜨리며 구을다가 이내 스러져 버리는 광경이 환하게 보였다.
일순간 번하게 밝아 오는 듯하다가 다시 자욱해지더니 비는 꼬지락이로 따르었다. 대번에 탑 위에 물이 펑하게 고이며 양 가로 철철 흘러 떨어지는 소리가 난데없는 폭포를 이룬 듯하였다.
"이리로 오십시오. 이 돌부리 밑에나마 좀 들어앉으십시오."
아사달은 캄캄한 가운데서 더듬거리며 주만을 불렀다. 아무리 주만으로도 폭포수같이 내리지르는 이 빗줄기를 그냥 맞기는 어려웠으리라. 그는 몸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벌써 흠빡 젖은 옷자락이 다리에 휘감기어 댓 자국을 떼놓을 수 없었다.
아사달의 손은 가까스로 질척질척하는 주만의 소매를 잡을 수 있었다.
물펑덩이가 다된 주만의 몸을 옆으로 반나마 안다시피 하여 어훙하게 떨어 낸 바위부리 밑에 들여앉힐 수 있었다.
그 바위 밑은 둘이 맞비비대고 몸을 웅크려야만 간신히 노박이 빗발을 가리울 만큼 좁았다.
"아사달님 어디로 나가셔요. 어디로 이렇게 비가 딸쿠는데."
주만은 자기를 안아다가 놓고 몸을 일으키는 아사달을 보고 부르짖었다.
"여기도 괜찮아요. 여기도 의짓간이 있습니다."
아사달은 분명히 거짓말을 하는 모양이었다.
"거기 무슨 의짓간이 있어요. 노박이로 비를 맞으실걸 뭐."
"괜찮아요. 아무 말씀도 마시고 조금만 그러고 계십시오. 인제 곧 비가 뜸해질 것이니까요."
아사달의 말을 반박이나 하는 것처럼 비는 더욱 줄기차게 쏟아진다.
"고새라도 이 줄기찬 비를 그대로 맞으시면 병환이 덧치실걸. 어떡하나, 어떡하나."
주만은 보이지도 않는 아사달을 찾으며 조바심을 하였다.
"여기도 괜찮습니다. 여기도 비를 맞지 않습니다."
아사달의 목소리는 아까보담 얼마를 떨어져 나간 듯하였으나 그 숨길은 몹시 거칠게 들려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