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060

"공사만 끝나면 곧 서라벌을 떠나실 작정이군요."
주만은 아까 아사달의 말이 마음에 키이는 듯 또다시 물었다.
"여러분의 후의와 신세진 것을 생각하면 얼마를 더 있어도 정이 남습니다마는 공사가 끝난 다음에야 한시바삐 그리던 고장으로 돌아가야지요."
아사달은 솔직하게 제 진정을 털어 내었다. 대공을 이룬 다음에야 하루인들 서라벌에 머뭇거릴 필요가 어디 있느냐.
그러나 주만에게는 그 솔직한 대답이 너무도 몰풍스럽고 매정스러웠다. 그는 내가 있는 이 서라벌이 그렇게 지긋지긋한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선선히 발길을 돌릴 수 있는가.
아아! 그에게는 내란 사람이 아무 상관도 없구나!
"부여가 서라벌보담 그렇게 좋아요."
주만의 이 말 한마디에는 만 가지 한과 원이 품겼으리라.
그러나 그런 줄이야 아사달은 꿈에도 알 까닭이 없었다.
"그렇게 좋을 거야 무엇 있겠습니까. 그야 서라벌에 대면 시골두메지요마는 사람이란 제가 나고 자란 고향이 그리운 것이랍니다."
"거기는 사자수가 흐른다지요. 맑고 깊은 강이."
"강만은 서라벌보담 나은지 모르지요."
"그 강을 에두르고 부여란 큰 서울이 있었더라지요."
"옛날의 번화한 자취가 이제는 쑥밭이 되었지만 그때나 이때나 한결같이 흐르는 사자수는 언제든지 아름답고 구슬픈 꿈을 자아내는 듯하지요."
"그래 우리 서라벌의 남내와 모기내보담 큽니까."
"크기로도 남내와 모기내의 여러 갑절입니다마는 첫째 깊고 맑고."
"나도 그 사자수를 좀 구경을 하였으면, 나도 그 아름다운 물가에 살아 보았으면!"
하고 주만은 한숨을 휘 내어쉬다가 갑자기 소용돌이치는 정열을 걷잡지 못하는 듯이,
"가실 때 나를 데려가 주셔요. 나도 가요, 나도 가요. 아사달님을 쫓아서 나도 갈 터예요. 네 아사달님. 제발 나를 데려가 주셔요. 아사달님의 고향으로 나를 데려가 주셔요."
잠깐 뜸하였던 바람은 다시 세차게 불기 시작한다. 하늘은 먹을 갈아 부은 듯이 캄캄해졌다.
주만은 펄렁거리는 옷자락을 여미지도 않고 이제란 이제야말로 이속에 쌓이고 쌓인 충정을 쏟아 놓기 시작하였다.
"네, 아사달님, 나를 꼭 데리고 가셔야 됩니다. 나를 버리고 가신다 해도 나는 아사달님을 찾아갈 터입니다. 하늘이 두 쪽이 나더라도 찾아가고야 말 것입니다."
아사달은 이 정열의 회오리바람에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구슬아기님, 구슬아기님, 구슬아기님이 부여로 가시다니 말이 됩니까. 이 좋은 서울을 버리시고……."
"난 서울도 싫어요. 아사달님이 안 계시는 서울은 무덤 속같이 쓸쓸해요."
"부모님도 버리시고……."
"부모님 곁을 떠나는 것이야 슬프지만 다른 데 시집을 가는 것보담 낫지 않아요."
아사달은 휘술레를 돌리이는 것처럼 머리가 핑핑 내어둘리었다.
"아무리 멀리 구슬아기님이 부여로 가신다 해도 이손 댁에서 그냥 두실 리 만무한 일……."
"그냥 안 두시고 설마 나를 어떡하실까."
"이런 서울에 사시다가 그런 두메에 어떻게 숨어 사십니까. 그런 생각을랑 아예 마십시오. 그런 말씀을랑 아예 마십시오."
"서울이면 어떠하고 두메면 어떠해요. 아사달님이 가시는 데라면 어디라도 좋아요. 물 속에라도 불 속에라도."
"구슬아기님, 그것은 안 될 말씀입니다. 그것은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
"아무리 아사달님이 안 된다 하셔도 이제는 틀렸습니다. 아무리 나를 떼치시려 하셔도 인제는 때가 늦었습니다. 이 몸은 아사달님의 그림자. 아사달님이 서나 앉으나 따를 그림자. 아사달님이 오나 가나 붙어다닐 그림자. 이 몸이 죽기 전에는 이 몸이 재가 되기 전에는 아사달님을 놓치지 않을 터예요. 아이지 않을 터예요."
그렇게 몹시 불던 바람도 별안간 무엇에 주눅이 든 듯 뚝 그치며 우르르 우레가 호통을 친다. 문득 먹장 같은 구름을 찢고 번개가 번쩍 하며 줄불을 터뜨리자 그 어마어마한 불칼로 하늘을 동강이를 내는 듯 무서운 음향이 일어나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벼락이 떨어진 것 같다.
번쩍 하고 눈 속을 스쳐가는 광채 가운데서 두 남녀는 일찰나 마주보았다.
주만의 얼굴도 핏빛이었다. 아사달의 얼굴도 핏빛이었다. 후닥뚝닥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무영탑 - 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