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059

물 먹은 별들은 졸립다는 듯이 깜박깜박하다가 하나씩 둘씩 지워졌다.
동쪽 하늘에 둥둥 떠오른 검은 구름장이 서으로 서으로 빨리빨리 달아났다. 대번에 하늘은 빈틈없이 흐려지고 구름 두께는 갈수록 짙어지는 듯하였다.
사나운 바람은 여전히 그칠 줄을 모른다.
주만의 가슴을 지지른 검은 구름장도 더욱 무거워졌다.
그와 맞대해 앉아 있어도 이렇게 괴롭고 외로울진대 차라리 돌아가는 것이 나을 성싶었다. 그러나 한번 간 털이는 차돌이와 무엇을 노닥거리고 있는지 다시 올 줄을 모르고 아무리 대담한 주만으로도 이 캄캄칠야에 털이도 데리지 않고 촛불도 없이 제 혼자 타닥타닥 돌아가기는 거리끼었다. 그나 그뿐인가, 정작 몸을 일으키려 하매 더욱 서러웠다.
'그와 이렇게 대할 적도 몇 번이나 될 것인가.'
생각하매 그와 떠나는 슬픔이 그와 같이 있는 괴로움보다 백 갑절 천 갑절 더할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었다.
'어둡지나 않았더면 그의 얼굴이나 실컷 보아 둘걸.'
아무리 눈을 닦아 보아도 어둠 속에 덩치만 으렷이 보일 뿐, 그 어글어글한 눈매와 연연한 입술의 나타나지 않는 것이 못 견디리만큼 안타까웠다. 털이에게 초롱까지 돌려보낸 것이 몹시 후회되었다.
에라 암만해도 보깨이는 내 속을 알릴 데는 그이 하나뿐이다. 기막힌 내 사정을 하소연할 데는 그 아니고 또 누구 있을까.
"나는 자칫하면 인제 자주 와서 못 뵙게 될지 몰라요."
마침내 주만은 입을 열었다.
"녜?"
아사달은 제 귀를 의심하는 모양이었으나 뒤미처,
"길이 그렇게 멀다니 어떻게 자주 오실 수야……."
"길이야 백 리면 어떠하고 천 리면 어떠해요……."
하고 주만은 불 같은 입김을 내쉬었다.
"그러면 무슨 딴 일이 생겼습니까."
아사달의 묻는 말씨도 급하였다.
이 아름다운 동정자, 이 곰살궂은 은인까지 자주 못 보게 된다면 너무도 쓸쓸해질 제 생활이 아니냐. 나그네의 사막에 핀 한 송이 꽃! 그것마저 없어진다면 너무도 보송보송하고 메마른 그날 그날이 아니냐.
"나, 나는 저, 정혼을 했답니다."
주만은 더듬거리면서도 분명히 제 할 말을 하고야 말았다.
"네, 정혼?"
아사달의 대답도 허둥지둥하였다.
"쉬이 시집을 가게 되겠단 말씀예요."
주만은 아사달이 잘 못 알아들은 줄 알고 또 한번 재우치고 어둠 속에서도 얼굴을 떨어뜨리었다.
"그, 그러시다면……."
하고 아사달은 말문이 꽉 막히는 듯하였다.
"그러시다면 인제는 참 또 오시기……."
말끝을 맺지 못하였다. 자기만 찾아 줄 그가 아니요, 자기만 돌보아 줄 그가 아닌 것을 아사달도 번연히 알건마는 어쩐지 마음 한 모서리가 허수하게 비어 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처녀가 왜 이 말을 하는고. 자기가 시집을 가고 안 가는 것을 왜 나에게 알리는고. 거기 깊은 뜻이 있는 듯도 싶었지만, 다시 생각하면 무두무미하게 발길을 뚝 끊어 버리면 궁금해할까 보아 미리 가르쳐 주는 아름다운 마음씨에 지나지 않는 듯도 싶었다.
"또 오기야 또 오지만 몇 번을 더 오게 될지……."
주만의 목소리는 눈물이 거렁거렁 고이었다.
"앞으로 단 한 번이라도 더 오실 수가 있다면야!"
아사달은 반색을 하다가,
"나도 인제는 이만큼 회복이 되었으니 염려를 놓으셔도 괜찮기야 합니다마는!"
서운한 가락을 띠었다.
"나도 몇 달만 애를 더 쓰면 이 탑을 끝을 낼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나도 곧 부여로 돌아가게 되겠습니다."
주만의 방문조차 끊어진다면 그는 한시바삐 일을 서둘러야 한다. 사랑하는 아내의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
"곧 부여로 돌아를 가셔요."
주만의 가슴엔 무엇이 뜨끔하게 맞치는 듯하였다.
"그렇게 쉽사리 일이 끝이 날까요."
"이젠 삼층도 대모한 것은 거진 끝이 났으니 잔손질만 하면 고만입니다. 일만 착실히 하고 보면 오래지 않아 손을 떼게 될 것 같습니다."
'그도 간다. 그도 갈 날이 얼마 남지를 않았구나. 그런데 나는, 나는…….'
주만은 속으로 외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