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058

아버지가 사랑으로 나가 버리자 어머니의 흑흑 느끼는 소리는 더욱 높아 갔다.
"얘, 인제 고만, 응."
달래다가 울고,
"그대로 뚝 그치지를 못하고."
꾸짖다가 울었다.
주만은 어머니의 상심하시는 것이 민망스럽고 죄송스러워서 가까스로 꿀꺽꿀꺽 울음을 삼키고 제 처소로 돌아왔다.
제 방에서 제 홀로 실컷 마음껏 울어 보려 하였더니 웬일인지 그렇게 퍼붓는 듯하던 눈물이 그새 말라붙었는지 다시 나올 것 같지도 아니하였다. 눈은 갈수록 보송보송해졌다.
눈물이 끊어지자 속은 바작바작 타기 시작하였다.
"이 일을 장차 어찌할까."
머리를 두 손으로 부둥켜쥐고 짜보았건만 암만해도 어찌할 도리가 나서지를 아니하였다.
누워 봐도 시원치 않고 앉아 봐도 시원치 않고 일어서 보아도 시원치 않았다. 애꿎은 몸만 자반뒤적이를 하면 할수록 한 그믐밤 빛 같은 아득한 절망이 그의 가슴을 물어뜯을 뿐이다.
눈물이 흐를 때는 오히려 낫다. 천만 개 바늘로 쑤시고 저미듯 쓰리고 따가운 속을 얼마쯤 눅여 주었던 것이다. 빼빼 마른 슬픔을 찬 이슬처럼 축여 주었던 것이다. 눈물마저 끊어진 지금은 더욱 견딜 수 없었다.
백 갈래 천 갈래로 곰곰이 생각해도 끝머리는 언제든지 허두로 돌아가고 만다.
"이 일을 장차 어찌할까."
주만이 혼자로는 너무도 벅차고 어려운 문제였다. 그렇다고 이 사정을 호소할 데가 어디냐.
오늘날까지 애지중지 길러 주신 부모님께도 하소연할 수 없는 이 사정. 무슨 응석이라도 받아 주시고 무슨 청이라도 들어주시는 부모님이시지만 이런 동이 닿지 않은 말씀이야 어찌 여쭈랴. 설령 용기를 가다듬어 발설을 한다 한들 그 결과는 뻔한 노릇이 아니냐. 천부당만부당한 이 사정이거니 동해바닷물이 마를지언정 들어주실 리 만무하다. 도리어 역정만 내시고 슬퍼만 하실 것 아닌가.
이 사정을 호소할 데는 오직 아사달뿐이다. 그러하다, 이 안타까운 사정을 알아줄 이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오직 그이 하나뿐이다.
그래서 밤 들기가 무섭게 털이를 데리고 이곳을 찾아온 것이었다.
다시 없을 기회, 다시 없을 자리에 그를 만났건마는 올 때 먹은 마음과 딴판으로 입이 떨어지지 않으니 웬일일까.
바람은 더욱 기운차게 더욱 사나웁게 불어 제친다.
와르르르 어디 산이라도 무너지는 듯. 들부수듯이 산기슭으로 휘몰려 들어가매 숲은 휘술레를 돌리듯 몸을 우쭐거리며 아귀성을 친다.
바람이 걸어가는 대로 술렁술렁 물결을 치는 듯한 솔숲이 밤눈에도 으렷이 보이었다.
주만의 가슴도 바람결같이 설레었다.
통사정할 오직 한 사람인 줄로 여기었던 아사달도 어찌 생각하면 헛되고 거짓인 듯하였다. 제 고장만 생각하고 세월의 덧없음만 설워하는 그에게 이 사정을 알린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가 정혼을 한 게 그에게 무슨 상관이 있을까. 내가 시집을 가고 안 가는 것이 그에게 하상 대사일까.
한 번 탑돌기를 같이 하고 한 번 까무러친 것을 발견하고 몇 번 문병을 하였을 뿐. 그와 나와 무슨 깊은 곡절이 있단 말인가. 그는 부여 땅의 젊은이, 나는 서라벌 처녀, 생각하면 아주 남남끼리가 아니냐.
부모님도 몰라주시는 사정을 그에게 알아달라니 너무도 터무니없는 노릇이 아니냐.
바람에 둥둥 뜨는 듯한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매 주만은 넓은 벌판에 단 홀로 남은 듯한 적막과 슬픔을 느끼었다.
"어유, 바람도 몹시 부는군. 저 별빛이 흐릿한 것이 어쩐지 물을 먹은 듯합니다. 비가 또 오시려나."
혼자 생각에 잦아졌던 주만에게는 아사달의 말소리가 마치 딴세상에서 울려 오는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