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057

"떨어질 꽃도 얼마 남지를 않았겠지요."
아사달의 한탄은 구슬픈 가락을 띠었다.
"떨어질 꽃!"
주만도 풀기 없이 속살거려 보았다. 제 걱정이 하도 복받치어 아사달의 자아내는 향수에 맞장구를 쳐줄 근력조차 없었다가 이 말 한마디가 야릇하게도 그의 귀를 울리었다.
"떨어질 꽃!"
또 한번 뇌자 조비비듯 하던 그의 가슴이 대번에 찌르르해지며 비감스러운 회포를 걷잡을 수 없었다. 이 난데없는 바람에 무참하게 지는 꽃. 이 어두운 밤에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이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이 스러지는 꽃 한 떨기야말로 닥쳐오는 제 운명을 그대로 일러주는 듯하였다.
"꽃 신세도 설다 하겠지만 그래도 필 때 피고 질 때 지지만……."
주만은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핀다 한들 피어 있을 때가 며칠입니까. 어느덧 봄이 다 갔으니…… 덧없는 세월…… 벌써 세 번째 봄이……."
아사달의 목소리도 눈물에 젖은 것 같다. 아내의 생각이 골똘할수록 그에게는 날 가는 것이 아까웠다. 하루바삐 대공을 이루어야만 아내의 자기 기다리는 날짜가 줄어들 것을.
"필 만큼 피고 지는 것이야 누가 한을 해요……."
주만의 목은 갑자기 메어졌다. 핀 뒤에 지는 것도 덧없다 가엾다 하거든 한번 활짝 피어 보지도 못하고 봉오리째로 사라질 것이 더욱 슬펐다. 알뜰한 사람을 부둥켜안은 채로 올곧게 뜻도 이루기 전에 휘날려 떨어질 것이 더욱 서러웠다.
운명의 악착한 손은 벌써 그의 뒷덜미를 짚었다…….
금지가 다녀간 그 이튿날로 유종은 금량상을 찾아갔다.
혼인말을 꺼내자 저편에서는 두말도 않고 선선히 승낙을 하고 말았다.
"금지 따위가 주제넘게 이손께 청혼이라니 말이 되오."
금량상은 아버지보다 더욱 분개하며 그 범수염을 거스리고 노발대발하였다던가.
평소에 그렇게 대범하던 아버지가 이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뇌고 뇌시며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듯이 기뻐하였다.
아버지 떠나던 날 주만은,
"제발 경신님께 다른 어진 배필이 있어지이다. 달리 정혼한 데가 있어지이다."
하고 검님께와 부처님께 축원을 올리고 또 올렸건만, 이렇게 쉽사리 정혼이 되고 말 줄이야.
"이 애 아가, 구슬아가, 인제 너는 천하영웅의 짝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 아니 기쁘냐."
하고 아버지는 싱글벙글 웃으며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렇듯이 기뻐하는 부모의 뜻을 받들지 못할 것을 생각하매 주만은 뜨거운 눈물이 비 오듯 하였다.
"저는 싫어요, 저는 싫어요. 저는 시집가기 싫어요."
속절없는 노릇인 줄 번연히 알지마는 앙탈을 하고 몸부림을 쳤다.
"이런 철부지를 어떻게 남의 가문에 보내오."
아버지는 웃고,
"이 애 울음이 무슨 울음이냐. 이런 경사에 불길하게."
어머니는 꾸중을 하였다.
"다 큰 애가 엉엉 울다니 하인들 볼썽사납다. 어서 그쳐라, 그쳐."
그래도 주만은 한번 터진 울음을 좀처럼 그칠 수 없었다. 멈추려 하면 멈추려 할수록 울음 소리는 더욱 커지었다.
어버이들은 그 울음을 온전히 다른 뜻으로 푼 모양이었다.
"아무리 네가 우리 슬하를 떠나기 싫어한들 쓸데가 있느냐. 딸자식으로 태어난 다음에야 아무리 앙탈을 한들 남의 가문에 안 가고 배길 수 있느냐. 남편을 잘 섬기고 잘 돕는 것이 여자의 타고난 천직이거든."
타이르던 아버지도 회심한 생각이 드는 듯 음성이 가라앉았다.
"자식이라야 저것 하나뿐. 저것마저 치워 보내면……."
어머니는 끝끝내 눈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어버이의 말씀을 들을수록 주만은 더욱 슬픔과 설움이 복받쳐 참으려야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치 매맞은 어린애처럼 홰울음을 내어놓고 말았다.
"이 애 고만 울어라, 고만. 너무 울면 지친다. 고만, 고만."
어머니는 딸의 등을 흔들고 어루만지다가 그대로 등 위에 엎드러지며,
"엊그제 젖먹이가 어느새 시집갈 나이가 되다니. 너마저 가버리면 이 어미는, 이 어미는 어떡하나……."
하고 훌쩍훌쩍 소리를 내어 운다.
아버지는 연경을 꺼내어 쓰고 사랑으로 나가 버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