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달은 오래간만에 일터로 올라갔다.
몸에 무슨 두드러진 병이 생긴 것이 아니요, 너무 흥분하고 너무 지친 나머지 일시 기절한 것이라 그 회복은 뜻밖에도 빨랐다.
며칠 누워 있는 동안에 몸살을 한번 앓고 나매 워낙 젊은 기운이요, 마음이 긴장한 탓인지 하루 이틀 다르게 원기가 소생이 되었다.
이렇게 회복이 속한 원인엔 주만의 힘이 없지 않아 많기도 했다. 그가 은근히 쑤어 보내는 잣죽과 속미음이 모래알 같은 절밥을 먹던 입에 달고 미끄러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야말로 한 모금 두 모금에 눈이 번하게 띄어 오는 듯하였다.
차차 밥을 먹게 되자 갖추갖추 반찬을 담은 찬합은 어떻게 맛난지 몰랐다. 서홉 밥 한 바리때가 오히려 나빴다. 어린애 모양으로 세 끼니가 까맣게 기다리었다.
그 사이 틈틈으로 곰과 찜 같은 것도 몰리알리 털이의 손을 거쳐 들어왔다.
한밥에 오르고 한밥에 내린다는 젊은 살은 여윈 자국을 메우듯 차올랐다.
이런 선물을 받을 때마다 아사달은 주만을 아니 생각할 수 없다.
"세상에 그런 아름다운 처녀도 있던가. 그런 마음씨 고운 처녀도 있던가."
외로운 경우일수록 불행한 처지일수록 정에 움직이기가 쉬운 것이 사람이거든 천리타향에 병들어 누운 몸을 이렇게 위로해 줄 이 누구냐. 돌보아 줄 이 누구냐.
아사달은 눈물겨웁도록 고마웠다.
아사달도 처음에는 까닭 없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고마웁게 구는 주만의 행동이 이상스럽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야 그런 대갓집의 귀동딸로 저 같은 시골뜨기 석수장이에게 구할 아무것도 없으리니, 이것은 온전히 아름다운 동정심의 나타남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야말로 현신 관세음보살님인지 모른다.
"이것도 필경 전생의 무슨 인연이리라."
아사달은 필경 불가의 이른바 인연으로 돌리고 말았다.
인연이라면 기인한 인연이다. 파일날 밤 다보탑을 도는 데서 만나는 것도 인연이요, 석가탑 위에서 까무러친 자기를 발견한 것도 인연이 아니냐. 하고많은 사람 가운데 하필 그 집에서 불공을 오게 되고, 하고많은 시각 가운데 그가 석가탑을 올라왔을 제 하필 내가 혼절하였을까.
인연의 실마리가 너무도 얼기설기한 데 아사달은 오히려 겁을 내었다.
그는 그러하거니와 아사달은 주만을 대할 적마다 아내 아사녀의 생각이 더욱 간절하였다.
주만이 아무리 정다워도 아사녀가 아니요 그 처녀의 손이 아무리 부드러워도 아내의 손이 아니다.
인생역로에 지나치는 길손에 지나지 않는 그이로도 대공을 이루려다가 넘어진 것을 보고 한 조각 동정심이 이다지도 곰살궂고 살뜰하거든 만일 내 아내가 이런 줄 알았으면 얼마나 가슴을 태우고 속을 끓일 것인가.
어서 하루바삐 하던 일을 끝을 내고 남의 신세를 과도히 받을 것 없이 빨리 돌아가야 한다.
그는 몸을 추스르게 되자 일에 대한 정열이 다시금 불같이 일어났다.
그는 몇 번 돌 다루는 기구를 들고 일터로 가려 하였건만 아상노장이 절대로 말리어서 오늘날까지 참고 참아 내려온 것이다.
오늘도 더 좀 몸이 완실하기를 기다리라 하였지만, 자기 몸이 이만하면 인제 넉넉히 일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만일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고 그대로 누워 있으면 도리어 병이 덧치겠다고 졸라서 간신히 아상노장의 허락을 맡은 것이다.
저녁을 일찌거니 먹고 나서 탑 위를 올라서매 돌들도 그리던 자기를 반기듯 벙글벙글 웃는 듯하였다.
정과 돌까퀴로 잔손질을 하려다가 자기의 힘도 시험할 겸 큰 군더더기를 우선 후려갈기기로 하였다.
버드나무 가지를 찢어 타레를 만들고 그 속에다가 정을 꼭 끼이도록 박아 놓은 다음에 물동 둥이를 번쩍 들어 혼신의 힘을 다하여 한번 내리치매 불꽃이 번쩍 일어나자 바위는 쩡 하고 비명을 치며 그대로 쩍 갈라져 털썩 하고 떨어진다.
아사달은 첫 힘부림이 성사를 하자 겨누를 들어 돌부리를 떨고 나서 다시 정질을 시작하였다.
어슬렁어슬렁 어둠이 짙어 오건마는 아사달은 또 옛 버릇이 나와서 밤 가는 줄도 모르고 마치와 정을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한참 일을 하다가 잠깐 팔을 쉬고 언뜻 눈을 돌리매 초롱 하나가 이리로 향하고 올라오는 것이 보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