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를 보내고 하인을 불러 주안상을 치우고, 유종은 서안에 쓰러지는 듯이 기대었다.
독사를 건드려 놓았으니 어느 때 무슨 화단이 뒷덜미를 짚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장중보옥 같은 외동딸을 탐탁한 자리에 출가를 시키는 것도 섭섭하려든, 하물며 마음에 신신치도 않은 금성 따위에게 내맡긴다는 것은 아름다운 구슬을 돼지우리에 던져 넣는 것보담 더 아깝고 원통하였다. 아무리 제 장래의 부귀와 영화를 위함이라 하더라도 차마 못 할 노릇이었다. 백발이 흩날리는 이 머리가 서리 같은 칼날 아래 사라질지언정 차마 못 할 노릇이었다.
설령 금성이가 출중한 재주와 인물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유종은 이 혼인을 거절할밖에 없었으리라. 첫째로 금지는 당학파의 우두머리가 아니냐. 나라를 좀먹게 하는 그들의 소위만 생각해도 뼈가 저리거든 그런 가문에 내 딸을 들여보내다니 될 뻔이나 한 수작인가.
도대체 당학이 무에 그리 좋은고. 그 나라의 바로 전 임금인 당명황(唐明皇)만 하더라도 양귀비란 계집에게 미쳐서 정사를 다스리지 않은 탓에 필경 안록산(安錄山)의 난을 빚어 내어 오랑캐의 말굽 아래 그네들의 자랑하는 장안이 쑥밭을 이루고 천자란 빈 이름뿐, 촉나라란 두메 속에 오륙 년을 갇히어 있지 않았는가.
금지가 당대 제일 문장이라고 추어올리는 이백이만 하더라도 제 임금이 성색에 빠져 헤어날 줄을 모르는 것을 죽음으로 간하지는 못할지언정 몇 잔 술에 감지덕지해서 그 요마한 계집을 칭찬하는 글을 지어 도리어 임금을 부추겼다 하니 우리네로는 꿈에라도 생각 밖이 아니냐. 그네들의 한문이란 난신적자를 만들어 내기에 꼭 알맞은 것이거늘 이것을 좋아라고 배우려 들고 퍼뜨리려 드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 아니냐.
이 당학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가는 우리나라에도 오래지 않아 큰 난이 일어날 것이요, 난이 일어난다면 누가 감당해 낼 자이랴.
"한 나이나 젊었더면!"
유종은 이따금 시들어 가는 제 팔뚝의 살을 어루만지면서 한탄한다.
몇 해 전만 해도 자기와 뜻을 같이하는 이가 조정에 더러는 있었지만 어느결엔지 하나씩 둘씩 없어지고 인제는 무 밑둥과 같이 동그랗게 자기 혼자만 남았다.
속으로는 그의 주의에 찬동하는 이가 없지도 않으련만 당학파의 세력에 밀리어 감히 발설을 못 하는지 모르리라.
지금이라도 젊은이 축 속으로 뛰어들어가면 동지를 얼마든지 찾아낼는지 모르리라. 아직도 이 나라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은 다음에야 방방곡곡을 뒤져 찾으면 몇천 명 몇만 명의 화랑도를 닦는 이를 모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아들이 없는 그는 젊은이와 접촉할 기회조차 없었다. 이런 점에도 그는 아들 없는 것이 원이 되고 한이 되었다.
이 늙은 향도(香徒)에게 남은 오직 하나의 희망은 자기의 주의주장에 공명하는 사윗감을 구하는 것이었다.
벌써 수년을 두고 그럴 만한 인물을 내심으로 구해 보았지만 그리 쉽사리 눈에 뜨이지는 않았다. 고르면 고를수록 사람 구하기란 하늘에 별따기보담 더 어려웠다.
유종은 기대고 있던 서안에서 쭉 미끄러지는 듯이 털요 바닥 위에 누웠다.
금지의 청혼을 그렇게 거절한 다음에는 하루바삐 사윗감을 구해야 된다. 금지로 하여금 다시 개구를 못 하도록 다른 데 정혼을 해놓아야 한다.
그러면 신라를 두 손으로 떠받들고 나아갈 인물이 누가 될 것인가. 삼한 통일 당년의 늠름하고 씩씩한 기풍이 당학에 지질리고 문약에 흐르는 이 나라를 바로잡을 인물이 누가 될 것인가.
유종은 눈을 감고 제 아는 젊은이를 우선 손꼽아 보았다.
첫째로 머리에 떠오르기는 상대등(上大等) 신충(信忠)의 아들이었다. 호남아로 생긴 허위대와 얼굴이 금성이 따위는 발 벗고도 따르지 못할 인물이로되 너무 귀공자답게 윤이 흐르고 허해 보이는 것이 흠절이었다. 그 다음에는 이손 염상(廉相)의 아들을 생각해 보았으나, 기상은 아비를 닮아 돌올하지마는 너무 거칠고 눈자위에 붉은빛이 돌아 어쩐지 화길한 인물이 아닐 듯싶었다.
그 다음으로 누구 누구 꼽아 보았으나 별로 신통한 인물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유종은 이손 금량상(金良相)의 아우 경신(敬信)을 생각하자,
"오, 옳지. 내가 어째 이 사람을 잊었던가."
하고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는 제 알 만한 이들의 아들들만 숭겨 보고, 미처 그 아우들을 생각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