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는 더욱 긴한 듯이 바싹 다가앉으며 결말을 내고야 말 기세를 보이었다.
"오늘 밤으로? 무에 그리 급하시오. 나는 그런 줄 몰랐더니 시중의 성미도 꽤 겁겁하시군. 속담 상말로 우물에 가시어 숭늉을 달라시겠네, 어허허."
날카로운 칼날을 슬쩍 피하듯 이손은 농쳐 버린다.
"이손께서 속담을 말씀하시니 말이지 어느 것은 쇠뿔도 단결에 빼라고 하지 않았소. 어허허."
금지도 네 수에 넘어갈 내냐 하는 듯이 격에 맞지 않는 너털웃음을 내놓는다.
"그것은 농담이지만, 아직 몇 해를 더 지나 보고 서서히 작정을 하십시다. 나이는 과년이 되었다 하겠으나 응석받이로 자라나서 뭣 하나 옳게 배운 것도 없고, 작인이 다 되자면 아비의 눈에는 아직 까마득하니까……."
"귀한 따님이니 응석도 더러 하겠지만 여자란 시집만 가고 보면 별판으로 딴사람이 되는 법이오. 그러고 또 나도 며느리는 단 하나뿐이니 그 응석쯤이야 내가 이손 대신 받은들 어떠하겠소. 외문으로는 영애가 응석은커녕 숙성하고 얌전하고 재주가 도저하다는 소문이 자자하지마는……."
"그야 헛소문이 난 게지. 자식 속이야 제 아비만큼 알 수가 없는 법이오."
"그야 지자는 막여부(知子莫如父)란 말이 없잖아 있지마는 지기일이요(하나만 알고) 미지기이라(둘은 모른다), 등하불명이란 문자도 있으니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격으로 어버이 아는 것이 외문만 못한 수도 더 많으니까."
"글쎄 외문이야 수박 겉핥기지, 속속들이 알기야 아비가 더 낫겠지……."
"그까짓 말을 가지고 승강할 거야 있겠소. 인물도 그만하고 재화도 그만하고 나이도 그만하면 그야말로 삼합이 맞은 듯하니 자, 겸사 말씀을 우리 다 그만두기로 하고 정혼을 합시다."
"글쎄 그렇게 급하실 게 없대도 그러시는구려."
그들의 수작은 개미가 쳇바퀴를 돌듯 그 자리에서만 뱅뱅 돌고 다시 더 나아가지를 않는다. 금지는 화증이 나는 것을 억지로 참고 매게단을 지었다.
"여보 이손, 자 우리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오늘 밤에 정혼만 해놓고 성례만은 서서히 하면 어떠하오. 이손 댁에서도 준비랄지 여러 가지 사정이 계실 터이니 성례만은 일 년이고 이태고 기다리라는 대로 기다리지요."
하고 금지는 유종을 똑바로 본다. 이 말에야 설마 피해 낼 핑계가 없으리라 하는 듯하였다.
과연 유종은 무어라고 피해야 옳을지 몰라 말이 꽉 막히고 말았다. 거절은 물론 작정한 노릇이로되, 어찌하면 금지의 귀에 거슬리지 않도록 듣기 좋게 보기 좋게 거절을 해버릴까. 그러나 유종은 언변 좋게 이리저리 발라맞출 줄을 몰랐다.
한동안 답답한 침묵이 소흥주 향기가 떠도는 방 안의 공기를 무겁게 눌렀다. 얼마 만에 금지는 참기 어렵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이손, 왜 말이 없으시오."
"……"
유종은 난처한 듯이 눈을 떴다 감았다 한다.
"이손이 말이 없으신 걸 보면 나 같은 사람과는 연사간이 되기를 꺼리시는 것 아니오." 금지는 단도직입으로 한마디를 푹 찌른다.
"무슨 그럴 리야……."
"안 그러시다면 왜 꽉 작정을 못 하신단 말씀이오, 워낙 내 자식이 병신스러우니까, 에이."
금지는 안간힘을 쓰며 불쾌한 빛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 신랑이야……."
"그러면 어디 다른 데로 정혼을 해두셨는지."
"다른 데 정혼은커녕 아직 혼인말을 해본 데도 없소. 정혼한 데가 있다면야……."
"그렇다면 우리끼리 만난 김에 아퀴를 지어 두는 것이 좋지를 않소."
유종은 마침내 단단한 결심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무슨 화를 입는 한이 있더라도 미룩미룩해 두는 것보담 차라리 단연코 거절을 하는 편이 나으리라 하였다. 그리고 엄연한 태도로,
"시중께서 그 미거한 것을 어떻게 아셨는지 이 밤중에 이렇게 찾아 주시고 정혼을 바라시나 나도 심중에 생각하는 바가 있어 허락을 못 해드리니 과도히 허물을랑 마시오. 오늘 밤에 허혼은 물론 할 수 없고 앞으로도 이 혼담은 중단을 하는 것이 피차에 좋을 듯하오."
금지의 얼굴은 일순간 파랗게 질리었다. 무릎 위에 얹힌 손이 달달 떨었다.
"이손께서 나를 그렇게 아실 줄은 정말 뜻밖이오. 어 술도 취하고 밤도 늦었으니 나는 고만 가겠소."
하고 금지는 벌에게 쏘인 것처럼 불시에 소매를 떨치고 일어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