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보고 그렇게 놀라니."
주만은 털이의 놀라는 소리를 듣고 말을 채쳐 가까이 오며 물었다.
"저, 저걸 봅시오. 저기 저 별당 담 위를. 아이 무서, 아이 무서."
하고 털이는 말고삐 잡은 손을 덜덜 떨며 말등에 착 달라붙은 듯이 엎드리고 머리 위로 손가락을 내어 허공을 가리킨다.
"얘, 뭐냐. 똑바로 가리켜라. 뭘 그렇게 겁을 낸단 말이냐."
"아이 쇤네는 무서, 무서."
하고 말등을 파고들어갈 듯이 더욱 머리를 수그린다.
주만은 담 위를 여기저기 훑어보았다. 환한 달빛 아래, 바로 자기 방에서 거의 맞은편이 될 만한 담 위에 웬 사내가 걸터앉아서 담에다가 배를 깔고 엎드렸고 그 밑에는 웬 헙수룩한 자가 왔다갔다하는 꼴이 보이었다.
처음엔 주만이도 머리끝이 쭈뼛하였지만, 담 위에 걸타고 있는 자의 해가지고 있는 꼴이 어떻게 어색한지 도무지 무서운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아가씨 아가씨 보셔곕시오. 그게 무엡시오."
털이는 이내 고개를 못 쳐들고 떨면서 묻는다.
"아마 도적놈들인가 보다."
하고 주만은 말을 채서 껑청 뛰어 한 걸음 달려들며,
"도적이야, 도적야."
소리를 벽력같이 질렀다.
이 호통을 듣자 담을 걸탄 위인은 어쩔 줄을 모르고 허리를 폈다가 굽혔다가 담머리를 얼싸안았다가 놓았다가 쩔쩔맨다. 담 밖에 처진 한 발을 담 안으로 끌어들이더니 다시 두 다리를 다 담 밖으로 끄집어내었다가 얼핏 뛰어내려오지도 못하고 디룽디룽 발버둥을 친다.
찢어지게 밝은 달빛에 그 허둥거리는 광경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주만의 눈 안에 들어왔다.
주만은 처음 도적이야 외칠 때엔 그래도 가슴이 약간 떨리었지만, 그 광경을 보니 한편으로 우습고 한편으로 장난해 볼 짓궂은 생각이 슬며시 일어났다. 말을 또 한번 채쳐 몰고,
"도적이야, 도적야."
부르짖었다.
디룽디룽 매어달린 다리는 더욱 버둥거린다.
온 동리는 첫잠이 들었는지 죽은 듯이 고요하고, 집 안에서도 아무 인기척이 나지를 않았다.
담 밑에서 왔다갔다하던 자가 마침내 담 위에 있는 자의 버둥거리는 발목을 잡아 주어도 담 위에 올랐던 위인은 좀처럼 내려뛰지를 못하고 담머리를 할퀴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기만 한다.
"세상에 별 우스꽝스러운 도적놈도 다 있구나. 저렇게 제가 겁부터 집어먹고 어째 남의 집을 넘어 들어갈 생각을 하였을꼬."
주만은 속으로 웃음이 터져나와 견딜 수 없었다. 더구나 더 우습기는 그 도적놈의 차림차림이었다. 달빛에도 웃옷이 윤이 질질 흐르는 것을 보면 한다하는 당나라 비단이요, 게다가 복두를 제켜 쓰고 제 딴에는 한창 거드럭거리느라고 공작꼬리까지 뻗쳐 꽂은 것이 정말 가관이었다. 그 버둥버둥하는 가죽목화도 가소로웠다.
'제가 훔친 것은 다 주워 입고 나온 게로구나.'
주만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더욱 허리를 분질렀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도적놈일수록 번드르르하게 꾸며야 할는지 모른다. 그래야 남의 눈을 속일 수 있을 것 아니냐. 그렇지만 담을 안고 저렇게 짓뭉개고 비벼 놓았으니 인제 어디를 달아난들 더욱 유표하지 않을까.
예라, 또 한번 혼뗌을 해주어야지 하고 주만은 더욱 목소리를 가다듬어,
"도적이야!"
또 외쳤다. 이 세 번째 호통이 떨어지자 그 버둥거리던 뚱딴지 다리도 쿵 하고 땅바닥에 떨어진다.
"털아, 털아, 저걸 구경 좀 해라. 저까짓 도적놈이 무에 무섭니."
그제야 털이도 빠끔히 눈을 내놓고, 위에서 떨어진 놈과 밑에서 받는 놈이 서로 얼싸안고 재주를 넘는 것을 보았다.
주만은 한층 소리를 높여 털이에게 일렀다.
"너 냉큼 앞대문으로 돌아가서 하인들을 깨워라. 저놈들을 모두 잡아가게."
이 호령을 듣자, 담 밑에 있던 도적놈이 쏜살같이 이리로 달려온다. 그것을 보더니, 털이는 다시 얼굴을 말등에 비비대며,
"에구머니이, 에구머니이, 도적이야, 도적이야."
하고 악을 악을 쓴다. 그 도적놈은 주만의 말머리 앞 한두 간통 떨어진 데 와서 그대로 넙죽이 엎드린다.
주만도 그 도적놈이 달려드는 것을 보고 몸을 흠칫하였으나 급기야 제 말머리 앞에 엎드리는 것을 보고,
'세상에 이렇게 지순차순한 도적놈도 있을까.'
하고 안심을 하였다. 도적놈은 머리를 조아리며,
"그저 살려만 줍시오. 죽을 죄를 지었사오나 제발 종용히 처분을 해줍시오. 구슬아가씨."
도적놈을 보고도 놀라지 않은 주만이지만 도적놈이 제 이름을 부르는 데는 아니 놀랄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