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041

"병인의 먹음먹이는 뭐를 가져가던."
주만은 털이를 데리고 자기네의 처소로 돌아오며 물었다.
"자세히는 안 봤지만 뭐 별것 있겠습니까."
"자세히 좀 보아 둘 걸 그랬지."
"얼른 보기에 고사리나물, 두부지짐 나부랭이 같더군요."
"그래 국물 같은 것도 없더란 말이냐."
"글녓시오. 뚜껑 덮은 것이 주발 하나일 적엔 아마 밥 한 그릇만 동그랗게 놓인 것 같더군요."
"병인이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주만은 눈썹을 찡긴다.
"바로 엊저녁에 혼절까지 한 어른이 밥 자시기가 어렵겠습지요. 더구나 그 모래알같이 보실보실한 밥을."
"그래 죽이나 미음 같은 것을 좀 쑤어 드렸으면 어떻단 말이냐."
주만은 중들의 몰인정한 것을 분개한다.
"어쩔 수 있겠습니까. 그 많은 식구에 여간 정성으로 밥 따로 죽 따로 짓겠습니까. 먹든지 말든지 밥 한 상만 올리면 저희들 도리는 다한 줄로 아는 모양이니. 차돌의 말을 들으면, 이번에 까무러치신 것만 해도 연 사흘 밤낮으로 일을 하시는데 어느 뉘 하나 물 한 모금 정성으로 권하는 이가 없는 탓이라니깝시오. 딱한 노릇입지요."
"어쩌면 그렇게 인정 사정들이 없을까."
주만은 탄식하다가,
"원 찬이나 갖추 있는지."
하고 다시금 걱정을 한다.
"찬인들 오죽해요. 사내들 손으로 하는 것이 망측합지요. 자세히 안 봐도 뻔합지요. 왜 아가씨는 못 잡수셔 보셨습니까. 댁에서 해내온 찬합이 아니면 어디 한 술이나 뜨실 법해요. 이손 댁 행차시니 저희들 있는 솜씨를 다 내어 만든 것도 그 꼴인뎁시오."
주만은 과연 네 말이 옳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저도 어제 낮에는 처음 먹는 소찬이 해롭지 않아서 별식으로 먹을 수 있었지만, 두 끼니부터 벌써 생목이 꼬이던 것을 생각하였다.
"이런 데서 병이 나면 첫째 음식이 아찔이겠는뎁시오."
털이도 제 아가씨의 속을 알아차리고 걱정하는 얼굴을 들었다.
"그러면 어떡하면 좋겠니."
"글녓시오. 찬합이라도 좀 갖다 드렸으면 좋으련만 마님이 아시면 걱정을 않으실지."
"앓는 사람 갖다 주는 걸 마님인들 왜 걱정을 하시겠니."
"웬걸입시오. 석수장이쯤 앓는데 찬합을 내다 주었다 해보십시오. 벼락이 나리실걸 뭐."
털이는 실로 무심코 이 말이 불쑥 나온 것이다. 제 아가씨가 치를 떠는 석수장이를 언감생심인들 얕잡아볼 엄두도 내지 않은 것이로되 설왕설래에 말이 잠시 잠깐 미끌어진 것이다.
그러나 벼락은 마님보담 아가씨한테로부터 먼저 떨어졌다.
"석수장이, 석수장이! 석수장이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냐."
주만의 성난 목소리는 벼락과 같이 털이의 귀에 떨어졌다. 그 얼굴은 꽃불을 담아 부은 듯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대번에 목청이 꺽꺽하게 쉬어진다. 찢어질 듯이 아늘아늘해진 입술이 부들부들 떤다. 제 아가씨가 노발대발하는 것도 여러 번 겪은 털이지만 이렇게 역정이 머리끝까지 오르는 것은 처음 보았다.
"요 방정맞은 년아, 요 매친 년아, 이년이 왜 입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릴꼬."
털이는 제가 저를 꾸짖고 제 입을 쥐어지르고 싶었다.
"아닙시오, 아가씨. 아닙시오, 아가씨. 저 저어."
하고 털이는 발뺌을 하느라고 곱이 끼었으나 얼른 그럴듯한 말을 돌려 댈 수도 없어 말끝은 더듬더듬한다.
주만은 한번 뇌까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휘적휘적 걸어간다.
"아가씨 아가씨 구슬아가씨, 쇤네 좀 봅시오, 쇤네 좀 봅시오."
털이는 주만을 쫓아가느라고 열고가 났다.
"쇤네 좀 봅시오. 조, 좋은 수가 있는걸입시오. 쇠, 쇤네 좀 봅시오."
아무리 털이가 가쁘게 불러도 주만은 좀처럼 돌아보지를 않았다. 마침내 죽여 줍시사 하는 듯이 털이는 주만의 팔뚝을 부여잡고 늘어졌다.
주만은 그제야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돌아보며 상긋 웃는다. 그 웃음은 쓰고 차다. 그만 말에 내가 그렇게 화를 내다니 너보다 내가 그르다 하는 듯하였다. 그 붉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서 철색이 돈다.
"저, 아가씨 조, 좋은 수가 있습니다. 찬합도 찬합이지만 앓는 이에게는 좁쌀 미음이 첫짼뎁시오. 쇤네가 지금 당장이라도 댁에를 뛰어들어가서 쥐도 새도 몰래 그 미음을 끓여 가지고 나왔으면 어떨깝시오."
주만은 어느덧 아까의 흥분은 사라졌고, 털이의 장공속죄한다는 말에 귀가 솔깃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