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 보십시오. 쇤네 꾀가 어떠한가."
"그 잘난 꾀."
"모로 가도 장안만 가면 고만 아닙시오."
"그야 마님께서 내 말을 잘 들어주신 탓이지. 어디 꼭 네 꾀 때문이냐."
"아니 누가 마님을 졸라 보시라고 했는뎁시오."
"얘 말도 마라. 생으로 사내 동생을 하나 낳아 줍시사고 떼를 쓰느라고 내 땀이 얼마나 빠졌기에."
"뒹굴고 발버둥을 치시고, 하하. 아이 우스워라. 그래도 애초에 묘책을 생각해 내는 것이 여간 슬기가 아니랍니다. 이런 대강이도 쉽지는 않답니다."
털이는 제 머리가 대견하다는 듯이 주먹으로 자근자근 두들겨 보이며 연해 공치사를 한다. 주만과 털이는 다보탑 있는 데로 걸어올라가며 기쁘게 얘기를 주고받는 것이다.
"아이 장해라. 그 모과머리가."
"생기기야 모과면 어떤갑시오. 머리란 슬기만 들면 고만 아녜요."
"슬기! 놀라운 슬기도 있고는 보겠구나."
"놀랍구말굽시오. 그래 아닌밤중에 남복을 차리고 수레도 안 타시고 등불도 없이 이 먼길을 오실 법이나 합니까. 발만 부르트고 호방에나 빠지고 죽을 고생만 하셨지 뭐입시오. 아이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한뎁시오."
하고 털이는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고 나서,
"자 오늘은 어떱시오. 구종을 늘인 듯이 앞세우시고 마상에 높이 앉으시어……."
"아이 장하다, 네 꾀가 장하다. 고만두어라. 무슨 난리를 치러 나가니. 마상에 높이 앉아서, 호호."
하고 주만도 조용한 웃음을 터뜨리었다.
"장하구말굽시오. 중들은 앞에서 굽실굽실하고. 그날 밤에 보행으로 초라하게 그냥 와보십시오. 절문 안을 들어서시게나 할 텐뎁시오. 맙시사, 아하하."
털이는 아주 신이 나서 재깔거리며 웃어 댄다.
"얘, 무슨 방정맞은 웃음 소리냐. 누가 들으면 괴란쩍게."
"누가 들으면 어떤갑시오. 이손 댁에서 불공을 드리러 오시고 그 댁 아가씨께서 저녁에 달빛을 따라 절 구경을 하시는데 어느 뉘가 감히 탄한단 말씀입시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요란스럽다."
"어유 조심은 퍽도 하시네. 어느 때는 밤중에라도 그냥 지쳐 들어오실 듯이 자는 사람을 깨워 일으키시고 야단법석을 하시더니. 그래 만일 아가씨 하시자는 대로 했더라면 그야말로 큰 야료가 일어날 뻔하였지! 온 집안이 벌컥 뒤집히고 온 절 안이 벌컥 뒤집히고. 쇤네는 목이 달아나고, 아하하."
털이는 웃음이 체해서 눈물까지 글썽글썽하여졌다.
"그래도 또 웃음이야, 무에 그렇게 좋으냐."
주만도 털이를 나무라기는 하면서도 솟아나는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무에 좋으냐굽시오. 쇤네도 좋기야 좋습지요. 그날 밤에 그 고생을 안 했으니. 그렇지만 아무리 한들 아가씨만큼이야 좋을깝시오."
"내가 좋을 일이 무에냐."
어쩐지 주만의 목소리는 조금 기어들어가는 듯하다. 귀밑 언저리가 갑자기 불그레하게 환해지는 것은 달빛이 거기만 비치는 탓만도 아니리라. 털이는 염치없게도 주만의 얼굴을 말끄러미 들여다보며,
"아가씨도 그런 시침을 뗍시오. 좋거든 그냥 좋다구 그리십시오, 히히."
털이는 정작 제가 좋은 듯이 겅정겅정 뛴다.
"원 그 애는!"
하고 주만도 입을 다물려 해도 그 가장자리가 자꾸만 풀리었다.
그들의 발길은 어느덧 다보탑 가까이 왔다.
"얘, 인제는 제발 좀 떠들지 말아 다오."
주만은 진정으로 털이를 타이르고, 고름을 다시 매고 옷깃을 여미었다.
그는 거룩한 자리에 들어서는 것처럼 기쁨에 헤벌어진 마음이 도사려짐을 느끼었다.
"탑돌기에 애간장을 태우던 데를 다 왔는걸입시오." 그래도 털이는 까불기를 그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