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달은 파일날 밤에 집 걱정, 아내 생각으로 말미암아 온밤을 거의 다 새우고 새벽녘에야 고달픈 졸음에 잠깐 눈을 붙인 둥 만 둥 깜짝 놀란 듯이 몸이 소스라치자 쏜살같이 탑 쌓는 일터로 올라갔다.
어젯밤을 꼬박이 새우다시피 하였건만, 이상하게도 머리가 거뿐하고 몸은 날아갈 듯이 가뜬하다. 잠 못 잔 이튿날에 항용 있는 무겁고 흐리터분한 기운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어떻게 쨍쨍하게 맑은지 튀기면 터질 듯하다.
그는 제 핏줄 가운데 제 것 아닌 무서운 힘이 용솟음함을 느끼었다.
오래간만에 참으로 오래간만에 어마어마한 신흥(神興)이 저를 찾아온 줄 그의 넋은 벌써 깨달은 것이다.
이 흥이 오기를 얼마나 바랐었던고, 기다리었던고, 이 '흥'이란 한없이 곱고 한없이 사납고 철석같이 미쁘다가 바람같이 변한다. 너르자면 온누리에 차고 잘자면 겨자알도 오히려 크다. 활달할 적엔 양양한 바다에 봄바람이 넘놀고 까다롭자면 시기하는 지어미도 물러앉을 지경이다. 그러고 갖은 조화를 다 가진 듯 고대 여기 있는가 하면 까마득하게 사라지고, 분명히 손아귀에 들었거니 하다가 돌아서면 간 곳을 찾을 길 없다. 어느 때는 푸드득 나는 새 날개에서 그대로 뚝 떨어져서 품속으로 기어들고 어느 때엔 발부리에 밟히는 조약돌에서도 불쑥 그 안타까운 모양을 나타낸다.
겨누와 정을 들고 얼마를 신고를 하고 생각을 하여도 날이 마치도록 그림자도 얼씬 않을 때도 있고, 생각이 나면 심술궂게도 아닌밤중에나 샐녘에야 언뜻 얼굴을 비치기도 한다.
바윗덩이에나 지질린 것 같은 답답하고 캄캄한 머리 가운데 으렷이 한 가닥 광명이 어릿거린다. 그 실낱 같은 빛줄이 차차 굵어지다가 떼구름을 쫓고 쑥 햇발이 불거지듯 갑자기 머릿속이 환해지면 어느 모를 어떻게 갈기고 어디를 어떻게 쪼아야 될 것도 따라서 환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통 때는 이 신흥이 그리 길지 않았다. 번개처럼 번쩍 하다가 그대로 사라져 버리기도 하고, 길어도 한두 시간을 지나지 않는 법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식전 꼭두부터 찾아온 것도 전보다 다를 뿐인가, 그 빛깔도 유난히 부시고 흐름도 잇달고 연달아 그칠 줄을 모른다.
그리고 그 빛물결도 여느 때 모양으로 한결같고 조용하지를 않다. 너무도 아름답고 너무도 찬란하고 너무도 급하다.
영롱한 무지개가 곤두서고 달과 별들이 조각조각 부서져서 수없는 금점 은점이 소용돌이를 친다. 넘놀고 뛰놀고 곤두박질을 치고 줄달음질을 친다.
이 급류에 따라 아사달의 팔은 무섭게 빠르게 놀려졌다.
"이 줄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
"이 고비를 놓쳐서는 안 된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 들여 번개같이 마치와 정을 놀리었건만 굽이치는 급류를 따라가기에 허덕허덕하였다.
그는 아침도 잊었다, 점심도 잊었다, 저녁도 잊었다. 밤이 되었다. 날이 새었다.
그의 줄기찬 정질과 마치질은 쉴 줄을 몰랐다.
쉬려야 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번 그를 휘어잡은 '흥'은 좀처럼 그를 놓아 주지 않았던 것이다. 황홀의 경계에 그는 온전히 들어서고 만 것이다.
돌결은 그의 손 아래에서 나뭇결보담 더 연하게 더 하잘것없이 부서지고 다듬어지고 밀려졌다.
영락없이 꼭꼭 제 자국에 들어가 맞는 쇠와 돌의 부딪치는 소리는 그의 귀엔 이 세상의 무슨 풍류보담 무슨 곡조보담 더 아름답고 더 신이 났다.
제 손이 거칠 때마다 드러나는 일머리는 이 세상의 무슨 보배보담도 더 소중하고 더 살가웠다.
그는 목마른 줄도 몰랐다. 배고픈 줄도 몰랐다. 죽고 사는 것조차 그는 몰랐으리라.
그는 이 흥겨운 한 시각이 아까웠다. 한 찰나가 아까웠다.
이따금 그의 팔에 힘이 아니 빠지는 것도 아니지만, 그 다음 순간에는 아까보담 몇 갑절 더 되는 힘을 다시 돌이킬 수 있었다.
둘째 층의 새김질과 다듬질은 댓바람에 끝이 나고 말았다. 셋째 층을 지을 바위도 몇 번 겨누질에 어렵지 않게 매만질 수 있었다.
돌 다루는 울림은 잔 가락 굵은 가락을 섞어 가며 마치 급한 소나기 모양으로 온 절 안을 뒤덮었다.
아사달의 일은 인제 낮도 없고 밤도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