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031

탑골에 있는 금시중 집에서 상서골 이손 유종의 집으로 가자면 안압지를 돌아내려 햇님다리를 넘어서면 남내 건너 남산 기슭에 너리편편한 기와집이 곧 그 집이다.
집 가까이 오자 금성은 말에서 내렸다. 열흘 지난 달이 낮같이 밝지마는 처음 온 집이라 어디가 어디인지 분별하기가 어려웠다. 금성의 주종은 벌써 여러 번 담장을 휘둘러보았다. 그러나 담은 두 길도 넘고 게다가 회칠을 번질번질하게 해놓았으니. 어디 발붙일 곳도 없는 듯하였다.
몇 바퀴를 돌아보다가 금성이와 고두쇠는 서로 마주보았다.
"어디 발붙일 데나 있어야지."
하고 금성은 짜증을 낸다.
"암만 둘러봐야 어느 한 모 허술한 데가 있어얍지요. 참 큰일인걸입시오."
"왜 너는 몇 번 심부름을 와봤다며. 그래 어디 보아 둔 데가 없단 말이냐."
"소인이 왜 도둑놈인갑시오. 그런 허술한 데를 보아 두겝시오, 허허."
"얘 웃을 때냐. 무슨 수로 어떻게 하든지 들어는 가봐야지."
금성은 화를 버럭 낸다.
"들어는 가보셔야겠지만…… 젠장맞을 무슨 도리가 있나? 진작 소인에게 그런 분부라도 하셨더면 미리 보아나 두든지, 이 댁 하인들 하고 연통이나 해놓았습지요."
"이제 와서 그 따위 소리를 하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고두쇠는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그 사나운 눈방울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더니 고개를 번쩍 들며,
"좋은 수가 있습니다. 서방님이 소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시면 어떨깝시오. 말하자면 무동을 서시란 말씀입니다. 그러면 담 위에야 올라가실 수 있겠습지요."
"무동을 서라! 그래 무슨 짓이라도 해보자."
금성은 술이 잔뜩 취한 판이라 체모를 돌아다볼 나위도 없고 앞뒤를 헤아릴 힘도 없었다. 무슨 창피를 어떻게 당하더라도 불 같은 욕심에 들어갈 생각뿐이다.
주종은 다시 뒤꼍으로 돌아 등성이 발채에 담이 조금 낮은 데를 찾아내었다.
"자 올라타십시오."
하고 고두쇠는 어깨를 떡 버티고 주저앉는다. 금성은 허전허전하는 발을 올려놓았다.
"자 소인의 어깨를 단단히 디딥시오. 자 일어섭니다."
금성은 지척지척 떨면서 몸을 일으키려다가, "어규, 어규" 하고 다시 주저앉는다.
"자 두 손으로 소인의 대강이를 꼭 붙드시고 계시다가 소인이 일어서거든 서방님이 일어서셔야 됩니다."
금성은 고두쇠가 시키는 대로 그 목덜미에 몸을 붙이고 고두쇠의 머리를 틀어안았다. 고두쇠는 일어섰다.
"자, 이젠 소인의 대강이를 놓으시고 일어서셔서 담머리를 더위잡아 보십시오."
금성은 일어서려 하였다. 오그렸던 무릎이 덜덜 떨리다가 한 발이 비뚝 하며 어깨 밑으로 뚝 떨어지는 바람에 고두쇠의 이마를 얼싸안고 가까스로 다시 목에 걸터앉았다. 고두쇠의 목 힘이 세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주종은 엎치락뒤치락 재주를 넘을 뻔하였다.
그래도 금성은 벌써 혼이 반이나 떠서 진땀이 쏟아지고 사시나무 떨듯 한다.
한동안 숨을 돌린 뒤에야 젖 먹던 힘을 다 들여 겨우 담머리에 손을 얹게 되었다.
"자 몸을 솟구쳐 보십시오. 그리고 배를 담에다가 척 걸쳐 보십시오."
하면서 고두쇠는 제 주인의 발을 떠받쳐 준다. 금성은 간신간신히 한 다리를 끌어올리어 담을 타고 앉아서 헐레벌떡 가쁜 숨을 모두 꾸려 쉰다.
"자, 어뎁시오. 아래로 내려뛰실 수 있습니까." 금성은 담 안을 굽어보더니,
"얘, 큰일났다, 큰일. 이 발밑이 바로 연못이로구나."
"녜, 연못? 그러면 석가산을 쌓아 놓은 데 말입시오."
"그래, 그래."
"그러면 일은 바로 되었는뎁시오. 거기가 바로 구슬아가씨 거처하시는 별당인뎁시오."
"응, 그래!"
금성은 씨근벌떡 숨도 옳게 쉬지 못하면서도 새 기운이 부쩍 나는 듯하였다.
"바로 내려뛰실 수가 없으시면 두 손으로 담머리를 움켜잡으시고 두 다리를 담 안으로 쳐들어 보십시오."
금성은 담 밖에 놓인 한 다리를 끌어올려 담 안으로 집어넣으려다가 말고 죽을 상을 해가지고 고두쇠를 내려다보며,
"얘, 암만해도 안 되겠으니 네가 좀 올라와야겠다."
"녜, 소인도 올라오란 말씀입지요. 어떻게 올라를 가나."
고두쇠는 올라갈 곳을 찾는 듯이 이리저리 담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문득 난데없는 카랑카랑한 소리가 들려 왔다.
"도적이야, 도적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