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러곕시오."
고두쇠는 곧 문 앞에 대령하였다.
금성은 아까와는 딴판으로 아주 점잔을 빼고 거의 눈을 흡뜨다시피 하고,
"너 말 안장 좀 지어라."
호령하였다.
"밤중에 어디를 행차하시랍시오."
마부는 그 유잣덩이 같은 코에 거기 알맞게 큼직한 콧구멍을 벌름벌름하며 묻는다. 삐죽하게 멋없이 큰 키에 퉁겨나올 듯한 핏발 선 눈이 매우 사나우면서도, 더부룩한 구레나룻 밑으로 헤벌어진 입이 그리 흉물스럽지는 아니하였다.
"밤이면 어떻단 말이냐."
"녜에 헤에, 그저 좀 어두우니 어떻게 행차를 하실까 여쭙는 것입지요."
"미친놈, 달이 대낮 같은데 어둡다니."
"녜에 황송합니다. 그저 영대로 시행합지요, 헤헤."
금성은 잠깐 무엇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너 안에 가서 놀이〔霞兒〕더러 주안상을 좀 차려 내오라고 일러라."
"주안상입시오, 헤에."
고두쇠는 또 한번 입이 벌어지며 그 뻐드렁니를 내어놓고 웃는다. 주안상이 나오면 상전도 물론 얼근해지려니와, 저도 한잔 얻어걸리게 되는 것이 기쁜 모양이었다. 그보다도 더 좋기는 상전이 술이 취하면 마음씨가 더 좋아지는 탓도 탓이지마는.
고두쇠가 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금성은 일락앉으락하면서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였다.
당건 복두에 공작 꼬리도 뻗쳐 꽂아 보고, 금 올린 허리띠에 구슬줄을 늘어뜨려 보고, 당경(거울)을 두번 세번 보고 또 보았다.
"밤중에 무슨 주안상이야요."
한참 만에야 놀이가 주안상을 들고 들어온다.
놀이란 금성의 몸종으로 말하자면 장가 안 든 도련님을 맡은 소임을 가졌다.
도련님은 도련님이지만 나이도 많을 뿐더러 더군다나 놀라운 당나라 벼슬까지 하기 때문에 도련님을 높여서 서방님이라고 부른다.
"주안상이란 으레 밤에 차리는 게지. 잔소리가 무슨 잔소리냐."
금성은 오늘 저녁은 웬일인지 들이닥치는 대로 불호령이다.
"그저 여쭈어 본 겁지요."
놀이는 상긋이 웃어 보인다. 쫄작한 키에 보조개 지는 뺨이 제법 어여쁘다.
"여쭈어 보기는!"
하고 눈을 부라리는 금성의 앞에 놀이는 서슴지 않고 술상부터 놓았다. 으리으리하게 윤이 흐르는 자단 소반에 은주전자와 안주 접시가 까딱하면 미끄러지려 한다.
놀이는 술상 앞에 도사리고 앉아서 옥잔에 퐁퐁 소리를 내고 호박빛 술을 붓는다.
"당주냐."
금성은 무엇이 못마땅한지 연해 그 잽새눈을 부라리며 따진다.
"당주, 당주, 귀가 아프군요. 그럼 서방님 잡수시는 술이야 언제든지 소흥주지 무어예요."
"그러면 그렇지."
금성은 아주 뽐내고 한잔을 홀짝 들이켠다. 안주는 신신치 않다는 듯이 상아 젓가락 끝으로 이 접시 저 접시를 뒤적대 보다가 해송자 얹힌 전복 한 저름을 집고 나서 연방 폭배로 놀이가 미처 부을 틈도 없이 마시고 또 마신다. 한 주전자에 반나마 찼던 술이 어느 틈에 없어진다.
"왜 술을 요것만 내왔단 말이냐. 이번에는 한 주전자를 잔뜩 내어와!"
"어유 또 한 주전자를 더 잡수시면 어떡하시게. 또 쇤네를……."
하고 그 가늘게 찢어진 눈초리를 살짝 깔아메친다.
"내어오라면 내어오지 무슨 딴말이냐." 금성은 눈을 지릅뜨고 죽일 년 족치듯 한다.
놀이는 하릴없이 안으로 또 들어가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서방님의 본버릇이 또 나왔구나 하였다. 밤이 이슥하면 중뿔나게 주안상을 차려 내오라고 야단야단을 하고 술만 취하면 갖은 행티를 다 부리고 끝끝내 사람을 놓아 주지를 않는다. 밤새도록 주정받이를 하고 그 이튿날에는 또 마님에게 죽일 년 살릴 년 하며 톡톡히 꾸중을 모시는 것이 놀이의 늘 당하는 고역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