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026

"주만이가 탑을 돌다께."
금성은 별안간 정신이 번쩍 나는 것처럼 고개를 쳐들고 제 누이동생을 거의 노려보다시피 바라본다.
"그만 일에 그렇게 놀라실 건 없잖아요, 오호호."
아옥은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또 웃음보를 터뜨린다.
"얘가 웃기는, 무두무미하게 탑을 돌았다고만 하니 궁금치 않으냐."
"참 궁금도 하실 거요. 그렇게 후비고 파는데 구슬아기 얘기란 그것뿐이니."
"얘, 또 그뿐이냐. 탑을 돌았다면 무슨 탑을 어떻게 돌았단 말이냐."
"불국사에 새로 쌓은 다보탑을 돌았지 무슨 탑이 또 어디 있어요."
"그래 탑은 별안간 왜 또 돌았단 말이냐."
"별안간이 무어예요. 그날이 바로 사월 파일. 탑만 돌면 소원성취하는 날인 줄 오빠는 모르시오."
"옳지 참, 사월 파일이라 발원을 하는 날이것다."
"어유 오빠도. 그래 구슬아기의 발원이 무엔지도 모르시오."
"주만의 발원을 내가 어찌 알겠니."
"그래, 참 정말 모르신단 말이에요."
"그걸 어떻게 아나."
"그것도 모르시면서 남이 땀이 빠지도록 물으시긴 왜 물어요."
"모르니 묻는 것 아니냐."
"그러시지, 그렇고말고. 당초에 모르시지."
"참말 알 수 없구나. 그래 무슨 발원일까."
"발원을 올리는 것도 유만부동이지. 임금님도 계시고 여러 어른이 느른 듯한데 저 혼자 빠져나가 탑을 돌 적엔 그 발원이 여간 이만저만한 발원이겠어요."
"글쎄 그래. 그렇다면 더더구나 무슨 발원일까."
"이적도 오빠는 모르시겠단 말예요."
"그럼 내가 어찌 알꼬."
"그럼 고만둬요. 난 기가 막혀서 말도 못 하겠네."
"네가 기가 막힐 거야 무에 있니. 아는 대로 말만 하면 고만 아니냐."
금성은 곁의 사람도 알리만큼 벌렁벌렁 숨길이 사나워 간다.
"그야 뻔한 노릇 아니에요."
"뻔한 노릇이 뭐냐."
금성은 그리 크지 않은 눈을 찢어지라고 흡뜨고 아옥을 훑어본다.
"그만하면 아실걸."
"모른다는밖에."
"그럼 내가 말해 드릴까."
"그래 무슨 까닭이냐. 무슨 발원이냐."
"어서 시집을 가여지이다 하는 발원이지 뭐예요."
"응, 그래!"
금성은 평좌진 다리로 그대로 뛰어서 몇 간통이나 나갈 듯하다가 다시 주저앉기는 앉았다. 그는 주만의 발원이 그 근처이리라는 것은 어슴푸레하게나마 짐작은 하였지만 제 어린 누이가 게까지 직설거를 하리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 하였던 것이다. 어차어피에 그는 아니 놀랄 수가 없었다.
"어유 오빠도, 그 짐작이 안 나셔서 지금 새삼스럽게 놀라시오, 오호호."
아옥은 짜장 우스워 못 견디겠다는 시늉이다.
"시집 어서 갈 발원? 그러면 시집은 누구한테로 간다던."
"어이 오빠는 내흉스럽기도. 그야 갈 데 있나. 장님이 더듬어 보아도 알 노릇이지."
"응 장님! 어느 장님한테로 간다던." 오라비는 일부러 더욱 놀라는 척을 하여 보인다.
"장님! 왜 오빠가 장님이오."
아옥은 한옆으로 우습고 한옆으로 어마 싶었다. 그런 줄 몰랐던 제 오빠가 어쩌면 이렇게 능청맞고 엉뚱할까 하였다.
남매는 서로 넘보는 터이었다.
"그러면 주만이가 내게 시집을 오고 싶어한단 말이냐."
"옳지 인제 바로 알아채셨군. 그야 정한 노릇이지."
"흥 정한 노릇!"
"그래도 미심다우시오."
"누가 아나."
"그러기 낮잠이나 자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예요. 어서 좀 기운을 내보시란 말예요."
"무슨 기운을 어떻게 내란 말이냐."
"그렇게 미심답거든 지금이라도 뛰어가 보시란 말이야요."
"어디로 뛰어간단 말이냐."
"미심다운 사람한테로 가보시란 말이지."
"미심다운 사람이나 있으면 좋게……."
"왜 이러시오. 어서 가보시라는 데나 가보아요. 똑똑히 일러드리리까, 구슬아기에게 말이야요."
"구슬아기, 구슬아기."
"왜 입으로 외기만 하셔요. 어서 가보셔요. 자칫하면 남에게 앗길 테니. 아닌밤에 탑을 돌고 시집을 어서 가여지라 하는데. 마음이 그만큼 달떴으면 다 알아볼 것 아니야요."
금성은 남이 제 마음먹은 것을 영락없이 알아맞출 때처럼 간이 오그라붙는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