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024

아옥은 제 오빠가 싱글벙글하는 양을 빤히 바라보다가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저도 덩달아 웃어 버렸다.
"아이 오빠, 또 꿈에 좀 봤다고 그렇게 좋으시오. 생시에 만났으면 큰일났겠네, 호호."
"아무렴."
금성은 역시 코로 웃는다. 그 실룩실룩하는 콧잔등엔 잔주름이 잡힌다.
"난 생시에 구슬아기를 보았는데 그런 줄 알았더면 오빠에게 좀 보여 드릴 것 같다가."
"언제, 언제."
금성은 그 소리에 귀가 번쩍 뜨이는지 목이 마르게 묻는다.
"언제는, 저번 파일날 불국사 놀이에서 봤지."
"오, 옳지. 거기는 같이들 갔겠구나. 그런 줄 알았더면 나도 참예를 할 걸 그랬군."
"어규, 오빠 마음대로 갈 수는 있구요. 명부와 딸들만 데리고 오랍시란 분부신데 오빠가 어떻게 참예를 해요."
"멀리서 구경도 못 해."
"그야 길가에는 거둥 구경꾼이 백절치듯 했습니다."
"그것 봐. 내가 보려면 어떡하면 못 보았을라구."
"그러니 더 앵하시지. 더 기가 막히시지."
"그래 정말 구슬아기가 오기는 왔던."
"그럼 거짓말로 왔을까."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네 말을 누가 믿누."
"안 믿거든 고만두어요. 누가 믿으래요."
"정말 구슬아기가 왔으면 옷은 무슨 옷을 입었던."
"남의 옷 입은 것까지 어찌 일일이 일러바쳐요. 입을 만치 입었지요."
"저것 봐. 무슨 옷을 입은 것도 모르니 봤다는 게 거짓말이지."
"그렇기에 고만둬요. 거짓말인 줄로만 알면 그뿐 아녜요."
아옥은 그 실눈이 더욱 샐쭉해지고 두 볼이 뾰루퉁하게 부어오른다. 참말을 거짓말이라고 몰아세우는데 골딱지가 난 까닭이리라.
오라비는 그래도 나이가 세 살이나 위인지라 일부러 짓궂은 척을 하고 누이동생의 골을 슬슬 올려 가며 제 듣고 싶은 대꾸를 끌어내려 한다.
"그러면 옷은 고만두고 손목에 팔찌는 끼었던."
"그럼 팔찌를 안 꼈을라구. 바로 번쩍번쩍하는 황금 팔찌던데."
"그래 그 손목이 굵던 가늘던."
"굵다면 굵고 가늘다면 가늘지."
"그리고 그 손은 어떻던. 조막손이지."
"조막손은 왜. 손가락 끝이 갸름갸름한 것이 천연 돋아나는 죽순 같던데."
"응, 그건 영악스럽게 보았구나. 그래 그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끼지를 안했지."
"아무것도 안 끼긴! 옥가락지를 끼었던데."
"그래 그 손을 어쩌고 있던."
"원 내 참, 땀을 뺄 노릇일세."
하고 인제야 아옥도 제 오라비의 뜻을 알아차리고 그 실눈에 생글생글 웃음을 흘린다.
"손을 어쩌고 있기는! 들었다 놓았다 늘어뜨렸다 오그라뜨렸다……."
"그만하면 네가 주만을 보기는 보았구나. 그래 너를 보고 아무 말도 않던."
"말이 무슨 말예요."
"그래 인사도 않더란 말이냐."
"임금님이 계시고 어른들이 계신데 애들끼리 인사가 무슨 인사예요."
"그렇게 너희들 사이가 데면데면하냐. 언제는 퍽 친하다고 하더니."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해요."
"왜 팔월 한가위에 궁중에 들어가면 너희들끼리 베짜기 내기를 하고, 언제는 네가 져서 주만이 앞에 절까지 하고 회소곡을 불렀다더니."
"그야 어디 구슬아기하고 나하고 단둘이 하는 거예요. 여럿이 패를 갈라 가지고 하는 노릇이지. 그럴 말로야 거기 모이는 여러 백 명도 모두 친하다고 하겠네."
"그러니 너희들은 만나도 인사를 않는단 말이냐."
"그야 딱 마주치면 인사야 하지만, 사람 많이 모인 자리에서야 쫓아다니며 알은척할 까닭은 없지 않아요."
금성은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적이 실망을 하는 눈치였으나 또 재차 물었다.
"불국사에는 너희들도 배를 타고 들어갔겠구나."
"그럼."
"주만이와 한배를 탔던."
"아녜요, 내 탄 배는 다른 배예요."
아옥은 어설피 주만의 말을 끄집어내었다가 제 오라비가 미주알 고주알 캐고 파는 데 진절머리를 내고, 금성은 주만의 눈매 하나 몸짓 하나 빼어놓지 않고 알알 샅샅이 알고 싶고 듣고 싶은데 제 누이가 말을 잡아떼려고만 하니 어디로 또 말머리를 돌려 볼까 하고 궁리궁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