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의 어머니 사초(史肖)부인은 외동자식이 딸 된 것이 원통하여 이따금 주만을 남복을 시켰다. 수놓은 통손바지에 남빛 반비를 떨쳐 입고 세포 복두를 제켜 쓰고 백옥 허리띠에 구슬끈을 주렁주렁 늘어뜨리고 손잡이에 금을 올린 환도를 느슨하게 차고 나서면 동뜨게 아름다운 귀공자였다. 장난꾸러기 주만이도 남복을 좋아하고 화랑의 흉내도 곧잘 내었다.
서리 같은 칼날을 뽑아 들고 공릉버선 위에 눌러 신은 목화로 터벅터벅 땅을 구르며, 그 영채 도는 눈을 제법 무섭게 부릅떠서 악 소리를 치고 달려들면 털이는 혼뗌을 하고 사초부인은 허리를 분질렀다.
그러나 이런 장난도 나이가 차가자 점점 그 도수가 줄고, 이마적 해서는 별로 한 적이 없거늘 이 밤중에 남장을 차리고 어디를 가자는 것인가. 털이도 한옆으로 겁도 나거니와 의심증이 더럭 났다.
"아이그 아가씨 왜 또 남복을 입으셨네. 또 쇤네를 혼을 내시려고 그럽시오."
하며 털이는 벌써 몸단속을 마치고 일어선 주만을 보았다.
"왜 또 네 목에 칼을 겨눌까 봐 겁이 나니."
주만은 방싯 웃고 제 손으로 허리띠를 휘 한번 더듬어 보이며,
"이것 봐. 어디 칼이 있니. 오늘 밤에는 칼은 안 찼으니 그렇게 겁낼 건 없어. 어서 따라나서기나 해라."
하고 방문을 열고 나간다. 털이도 옷을 다 입고 뒤를 쫓아나가다가 주춤 섰다.
"아이, 이렇게 어두우니 누가 뺨을 쳐도 알깝시오."
"그러면 초롱 준비를 할까."
주만은 진국으로 묻는다.
"어디를 가시기에 초롱 준비까지 하신단 말씀이에요. 방 안의 촉대를 좀 들고 나오랍시오."
"촉대를 들고 갈 수야 있나."
"그럼 어디를 멀리 가시랍시오."
"가만 있거라."
주만은 무엇을 생각하듯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벽장에서 부리나케 초 몇 자루를 내어 털이를 준다.
"너 초롱은 어디 있는 줄 아니."
"초롱이야 광에 들었습지요."
"광에…… 광문이 잠기지 않았을까."
"왜 안 잠겨요. 햇구멍이 훤할 때 벌써 닫아거든뎁시오."
"그럼…… 그럼 그 열쇠는 누가 맡았을까."
"원 아가씨도, 마님이 맡으셨지 누가 맡아요."
"……"
주만은 잠깐 말이 없다.
"초를 몇 자루씩 내어놓으시고 대관절 어디를 가시랍시오. 이 깊은 밤에."
털이는 제 주인의 행동에 갈수록 불안을 품는 눈치였다.
"어머니가 맡으셨다. 어머니가……."
주만은 제 혼자말로 중얼거린다.
"글쎄, 가실 곳을 좀 말씀을 합시오. 그러면 제가 무슨 도리든지 차릴 테니."
"만일 열쇠를 찾으러 갔다가 어머니께서 잠을 깨시면……."
"어이구, 또 광문이 여낙낙하기나 한뎁시오? 어떻게 빽빽한뎁시오. 한번 열자면 왈그륵달그륵 온 집안 사람이 다 잠을 깰 텐데……."
털이는 벌써 주만의 뜻을 알아차리고 또 광문 열 소임은 갈 데 없이 제 차지인 것을 깨닫자 미리 방패막이를 한 것이다.
방 한복판에서 서성서성하고 있던 주만은 펄썩 주저앉는다.
"어떡하나!"
그 소리는 벌써 울멍울멍한다.
"불국사엘 가시려고 그러시지요. 이 밤중에 안 됩니다. 안 되고말곱시오. 대감께서나 마님이 아셔 봅시오. 큰일납니다, 큰일나. 애꿎이 이 털이란 년이 물고가 나겝시오. 아유 생각만 해도 소름이 쪽쪽 끼치는뎁시오. 맙시사, 맙시사."
털이는 벌써 주만의 흉중을 꿰뚫어보고, 호들갑을 떨며, 고개를 살래살래 흔든다.
"설령 초롱을 꺼낸다손 치더라도 그 먼 데를 어떻게 걸어가십니까. 게까지가 이십 리는 잔뜩 될걸입시오. 한낮에도 어려울 텐데 이 캄캄 칠야에 말도 안 타시고. 수레도 안 타시고 보행을 하시다니 될 뻔이나 한 말씀이에요. 자 수레나 말을 꺼낸다고 해보십시오. 아무리 쉬쉬한들 자연 왁자지껄해서 집안이 벌컥 뒤집힐 걸입시오. 천만다행으로 몰래몰래 안장을 짓는다 해도 한 입 건너 두 입 건너 내일이면 소문이 쫘아할 것 아닙시오……."
"듣기 싫어!"
털이가 안 된다는 까닭을 미주알고주알 캐내서 수다 늘어놓는데 주만은 참다 못하여 소리를 빽 질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