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017

아사달은 제 아내가 자려니 지레짐작을 하였다가 그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적이 놀랐으나, 이내 미안한 생각이 불일듯 하였다.
아내는 자기가 들어올 때를 고대고대하며 그 곤한 잠도 잊어버리고 저렇게 단정하게 앉았는가 하매 그는 가슴이 찌르르하도록 애연하였다. 그런 줄은 모르고 일부러 만날 동안을 질질 끈 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오늘 밤 내일 아침까지만 보면 몇 해를 그릴 것이 아니냐. 그 귀중한 시간을 어쭙잖은 이허로 헛되이 넘긴 것을 생각하면 뼈가 저리었다. 한치 한푼을 다투어도 오히려 아까울 것을.
"왜 입때 자지를 않소."
아사달은 아내의 앞에 주저앉으며 번연히 아는 잠 안 자는 까닭을 물었다.
"고대 자요."
하고 아내는 방긋 흩지게 웃어 보인다. 그 웃음 속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듯하다.
"……"
"……"
부부는 마주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곤한데 눕구려."
"눕지요."
그러나 둘이 다 누우려는 기척도 보이지 않았다.
"……"
"……"
또 한동안 말은 끊어졌다.
"나는 내일 서라벌로 떠나가오."
한참 만에야 아사달은 큰 힘을 써서 가까스로 허두를 내놓고 아내의 기색을 살피었다. 아사달은 이 말만 끄집어내면 담박에 슬픔의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려니 하였었다. 울며 불며 발버둥을 치려니 하였었다.
그러나 아내는 의젓하게 도사리고 앉아 있을 뿐, 대답도 간단한 한 마디였다.
"나도 알아요."
이 홀가분한 한마디가 만근의 무게를 가졌다. 천 마디 만 마디의 슬픈 원정과 설운 사설보담도 몇 갑절 되는 뜻을 풍겼다.
그 자그마한 가슴에 커다란 고통을 부둥켜안은 채로 꿀꺽꿀꺽 참고 있는 모양이 못 견디리만큼 애처로웠다. 아사달은 제 쪽에서 엉엉 목을 놓고 울고 싶었다.
"내일은 일찌거니 길을 떠나실 텐데 정말 어서 주무세요."
하고 아사녀는 깔아 놓은 이부자리를 다시금 매만지다가 갸웃이 남편을 쳐다본다. 방 안은 덥지도 않은데 그 오목한 코 끝에는 땀방울이 송송 솟아났다. 슬픔을 누르느라고 마음속으로 무한 힘을 쓰는 까닭이리라.
아사달은 대번에 목이 꽉 잠기는 듯 대꾸도 나오지 않았다.
"어서 주무셔요."
아사녀는 또 한번 조른다.
아사달은 그대로 쓰러질 듯이 누웠다.
"이렇게 바로 누우셔요."
아내는 베개를 고쳐 베고 이불의 접힌 자락을 펴서 따둑따둑 덮어주고 나서 물끄러미 남편의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남편의 쳐다보는 눈길과 딱 마주치자 그 젖은 눈동자는 달아날 곳을 몰라 잠깐 허전거리는 듯하더니 어색하게 상긋 웃고 저도 따라 눕는다.
아사녀는 눕는 길로 곧 눈을 감는다.
이윽고 아사달은 고개를 쳐들어 아내의 얼굴을 자세자세 보고 또 보았다. 제 머릿속 깊이 새기어 넣으려는 것처럼.
은행껍질 같은 눈시울이 띠룩띠룩 움직이고 남유달리 긴 속눈썹이 가늘게 떠는 것을 보면 아내도 눈만 감았다뿐이지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은 곧 알 수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아내는 번쩍 눈을 떴다. 고개를 쳐들고 있는 남편을 보고,
"아이, 큰일났네. 입때 안 주무시고 내일 어찌 길을 떠나시어."
살짝 눈썹을 찡기고 제 얼굴을 치우는 듯이 돌아누우려 하였다. 마치 제 남편의 잠 안 자는 원인이, 제 얼굴이 그 눈앞에 놓여 있는 탓으로만 여기는 듯하다.
아사달은 더 참을 수 없었다. 돌아누우려는 아내를 끌어당기자 그 가냘픈 몸을 으스러지도록 껴안았다.
이런 때에도 수줍은 아내는 고개를 숙여 남편의 가슴팍에 제 얼굴을 파묻는다. 그 언저리가 뜨겁고 축축해지는 것은 아내도 인제야 소리 없이 우는 탓이리라.
한참 만에야 하나로 녹아드는 듯하던 두 몸은 떨어졌다.
아내는 먼길 가는 남편에게 끝끝내 요사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어느결엔지 눈을 닦고 또 닦은 모양이었으나 아무리 해도 젖은 속눈썹은 옥가루를 뿌린 듯 번쩍이고 발그스름해진 콧등이 더욱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