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녀를 흠모하기는 결코 팽개 하나만이 아니다.
키다리 장달, 되바라진 작지, 웅성 깊은 싹불, 여낙낙한 웃보…… 어느 제자치고 아사녀를 내맡겨도 마음을 놓을 만한 위인은 눈을 닦고 보아도 없었다.
그들의 환영도 하나씩 둘씩 번갈아 들며 제각기 다 다른 비웃음을 던진다.
아사달은 눈을 멍하게 뜬 채로 흉측스런 꿈을 꾸어 내려간다.
그 흉한들이 겹겹이 에워싼 한복판에 아사녀는 울면서 갈팡질팡한다. 이 틈을 비잡아도 무쇠 같은 팔뚝들이 막고 저리로 버르집어도 그 가냘픈 몸을 빼쳐 낼 길이 없다. 마지막엔 기진맥진하여 그대로 쓰러지매 사나운 짐승의 떼는 우 하고 달려든다!
"무슨 그럴 리야 있을까. 저희들도 사람이거니 스승의 은혜를 생각한들 외동딸에게 그런 몹쓸 짓이야……."
아사달은 지겨운 제 환상을 스스로 털었다.
집에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장인도 그저 생존해 계시고 아사녀도 몸 성히 잘 있을 것이다. 떠날 때보담 얼마를 더 자라나고 더 아름다워졌는지 모르리라. 내 올 때를 손꼽아 기다리며 바시시 사립문을 열고 서울길을 바라보는지 모르리라. 그 갸름한 종아리에 인제는 살이 올랐는가.
아사달은 견딜 수 없었다.
부여가 그립다. 스승이 그립다. 아내가 그립다.
탑이고 무엇이고 다 집어치워 버리고 지금 당장 고장으로 날아가고 싶다.
달 비추인 사자수는 금물결 은물결이 굽이굽이 넘노리라. 병상에 누웠던 스승은 얼마나 반기실까. 방싯 웃는 아사녀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치리라.
이 먼 데를 왜 왔던고. 스승도 없고 아내도 없는 이 먼 데를 왜 왔던고.
대공을 이루리란 불 같은 정열에 앞뒤를 헤아리지 않고 허둥허둥 길을 떠난 것이 몹시 후회되었다.
이렇게 그리웁고 마음이 졸일 줄 알았더면 아무리 스승의 명령이 엄하더라도 한사코 좇지를 않았을 것이다.
서울에 큰절을 이룩하고 그 절에 탑을 모시는데 천하의 명공을 구한다는 방이 내어걸리기는, 그들이 혼인한 지 한 일 년 안팎이었다.
저자에 갔다가 이 방을 보고 아사달의 가슴은 뛰었던 것이다. 속에 가득한 재주와 솜씨는 쏟힐 곳을 찾지 못하여 발버둥질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돌아와서 스승에게 그 사연을 알리매 늙은 스승은 앉은 자리에서 몸을 소스라치며 애들처럼 기뻐하였다.
"인제야 네 재주와 솜씨를 보일 때가 왔구나. 이런 기회란 사람의 일생에 몇 번 있는 것이 아니다. 어서 행장을 수습해라. 어디 서라벌 석수들과 좀 겨루어 보아라."
스승은 흰 수염을 거스리며 매우 흥분된 말씨다. 그러고 이튿날로 길을 떠나라고 서둘렀다.
그는 사랑하는 제 제자의 예술적 대원을 이루어 주기 위하여, 빛나는 전통의 솜씨를 자랑하기 위하여, 단 하나 사위를 내놓는 헛헛함도 잊어버린 듯하였다. 귀여운 딸의 안타까운 이별도 돌아보지 않는 듯하였다.
아사달은 신이야 넋이야 하며 행장을 재촉하였으나 아내와 나누일 생각을 하니 가슴이 뻑적지근 않을 수 없었다.
새 정이 들까말까 한 아내! 그러하다, 그들은 아직 정조차 흐뭇하게 들지를 못하였다. 어린 아내는 언제든지 그를 부끄러워하였고, 그도 또한 무슨 깨어지기 쉬운 보물처럼 아내를 소중히 알아, 흥껏 마음껏 다루지를 못하였다. 부부가 되기는, 햇수로 따져 보면 벌써 이태를 잡아들건마는 그들에게는 장가들고 시집온 지가 바로 어제런 듯하였다. 행복스러운 날은 꿀보담 더 달고 번개보담 더 빠르게 지나간 것이다.
이러한 아내이거니 그와 어떻게 작별을 할 것인가. 그래도 자기는 사내대장부다. 대공을 이루기 위하여 마음을 도지게 먹을 수 있었지만, 아사녀는 얼마나 슬퍼할까. 차마 그 앞에서도 갈린다는 소리를 끄집어낼 수가 없었다.
내일같이 길 떠날 오늘.
그는 아사녀와 단둘이 마주치는 동안을 될 수 있는 대로 늘이려 하였다.
낮에는 이리저리 피할 수가 있었지마는 해는 어찌 그리 엉덩뚱 지나가는지 어느새 저녁이 되고 말았다.
아내와 만날 시각이 자꾸자꾸 다가들자 그의 마음은 조비비는 듯하였다.
저녁에 그를 보내는 조그마한 잔치가 벌어진 자리에서도 그는 끝까지 몸을 일으키려 들지 않았다.
자정이 지나 밤이 이슥한 뒤에야,
"인제는 잠이 들었겠지."
하고 아사달은 가만가만히 제 방으로 돌아왔다.
살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내는 거물거물하는 촛불 밑에 그린 듯이 앉아 있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