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달은 쫓기는 듯이 제 처소로 돌아왔다.
요새는 으레 탑 위에서 밤을 새는 버릇이로되 오늘 밤따라 떠들썩한 인기척이 수선스럽기도 하려니와 어쩐지 몸과 마음이 실실이 풀리어 지렛대와 정을 들추스릴 기력조차 날 것 같지도 않았다.
쓰러지는 듯이 제자리에 드러눕자 잠이 곧 올 것처럼 눈이 감기었다. 천근이나 되는 몸이 마치 큰 돌멩이가 물 속으로 떨어지듯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는다. 온몸이 으스러지게 고단하면서도 오려던 잠은 설들고 정신이 새삼스럽게 말뚱말뚱해진다.
'그 처녀가 누굴까.' 무두무미하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까 주만이와 마주치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온다.
"옷 맨드리만 보아도 귀인이 분명한데 아사녀로 속다니."
하고 아사달은 어이없이 웃었다.
아사녀(阿斯女)란 그의 아내의 이름이었다.
제 아내와 그 처녀의 얼굴을 다시 한번 눈앞에 그려 보매, 갸름한 판국과 입모습 언저리나 비슷하다 할까, 다른 데는 아무 데도 닮은 점이 없었다.
아사달이 주만을 보고 그렇게 놀라고 반긴 것은 한갓 제 고장에 두고 온 아내로 그릇 본 까닭이었다.
사랑하는 아내를 떠난 지도 어느덧 삼 년, 이 길고 긴 동안에 얼마나 아내가 아쉽고 그리웠던가. 탑 쌓는 대공에 바친 몸이요 마음이건만, 천리를 넘나드는 상사몽은 막을 길이 없었다.
오늘도 일터에 올라갔다가 절 안이 들레어 그대로 내려오고, 그 들레는 까닭으로 오늘이 파일인 줄 알게 되자 집 생각이 더욱 간절하였다.
부여도 오늘은 야단이리라. 우리집에서도 등을 만들리라.
그 혼란한 솜씨로 내 등은 또 얼마나 훌륭하게 아름답게 만들었을까.
아사달은 아내와 같이 쇠던 지난날의 재미나던 파일을 생각하고 가슴이 뻐근해졌다.
부여에서도 파일이 되면 식구 수효대로 등을 만들고 등마다 그 등 임자의 생년월일을 써서 복을 빌었다.
자기도 파일을 진작 알았던들 비록 객지에서나마 장인과 아내를 위하여 등을 만들었을 것을. 등은 못 만들었을망정 밤에는 탑을 돌아 제 스승과 아내의 복을 빌리라 하였다.
절 안이 너무 붐비어 일은 손에 잡힐 것 같지도 않아, 낮에는 제 처소에서 누워서 보내고, 저녁이 되어 모든 사람이 재 올리는 데로 몰린 뒤에 그는 홀로 탑을 돌러 나왔던 것이다.
한 둘레 두 둘레 돌아갈 때 날개 돋친 생각은 훨훨 고장으로 난다.
갸둥질을 쳐주는 구름자락을 마다하고 달은 서쪽으로 서쪽으로 미끄러진다.
아사녀도 저 달을 보고 있으리라. 만일 저 달이 거울이련들 예 있는 나도 저 속에 비치고 제 있는 저도 저 속에 비칠 것을.
달짝지근한 감상(感傷)이 사라지자 집 걱정이 새록새록이 가슴을 누른다.
제일 염려는 제 스승이요 장인인 부석의 건강이었다.
아사달이 떠나올 때에도 부석의 천촉증은 매우 심하였다. 한번 기침을 시작하면 그 쿨룩 소리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오장육부를 쥐어짜는 듯한 그 악착한 기침 소리, 지금도 선하게 귓가에 울리는 것 같다.
나이 벌써 칠십이 넘었으니 아무 병 없이 정정하더라도 춘한노건을 믿을 수 없겠거든 그런 고질까지 지녔으니 오래 부지야 어찌 바랄 수 있으랴.
'만일 돌아가셨으면!'
이런 불길한 생각이 문득 일어나자 그는 몸서리를 치고 탑 도는 발을 빨리빨리 옮기었다. 한 둘레라도 더 도는 것이 마치 제 발원을 이루는 데 큰 등별이 있을 것처럼.
만일 장인이 돌아가셨다면! 아사녀에게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진 것이다.
자기도 혈혈단신 외톨이요, 처갓집도 어느 일가친척 하나 들여다볼 사람이 없는 홑진 집안이다. 홀로 남은 아사녀는 어찌 되었을까. 어리고 약한 여자의 몸으로 그런 큰일을 어떻게 겪을 것인가. 큰일을 감당하고 못 하는 것은 오히려 둘째 셋째 문제다. 남유달리 눈여린 그가 이 지극한 슬픔에 어떻게 견디어 낼 것인가. 위로해 주는 사람도 없이 울고 또 울다가 그대로 자지러지지나 않았을까.
머리는 풀어 산발을 하고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을 그대로 감아 버린 아사녀의 모양이 얼찐 눈앞에 나타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