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007

그는 이손(伊朄) 유종(唯宗)의 딸 주만(珠曼)이었다. 흔히는 구슬아가씨라고 부른다.
"아이 야릇도 해라. 참 거기 물문이 있구먼요. 아가씨는 눈도 밝으셔."
털이는 그 동그란 눈을 이번에는 지그시 감은 듯이 하고 바라본다.
"그 물문 안으로 배를 타고 한번 돌아 보았으면." 주만은 혼잣말같이 중얼거린다.
"그게 뭐 어려워요. 좀 돌아 보자고 사공에게 그럽지요."
"글쎄, 그럼 그래 볼까."
주만은 뛸 듯이 기뻐하며 배 안을 돌아보고,
"우리 저 물문으로 지나가 볼까요." 하고 물었다.
"그래요, 참 그래 봐요."
"그러면 작히나 좋을까."
몇몇 젊은 아가씨들도 손뼉을 칠 듯이 찬성을 한다.
다른 배들이 돌사다리 밑 돌기둥에 닻줄을 매려 할 때에, 주만을 실은 배만 슬쩍 뒤로 빠져나왔다. 청운교 백운교 사이의 홍예 밑을 돌고 다시 연화교 칠보교 물문을 접어들었다.
주만은 뱃전에 찰랑찰랑하는 물결을 손으로 움켜 보기도 하고 물굽이를 따라 배가 뱅뱅 도는 것을 어린애같이 좋아라 한다.
배가 닿을 데 닿은 뒤에도 주만은 제가 지나온 물문을 보고 또 보며 맨 나중까지 머뭇거린다.
일행은 벌써 다 배에서 내리어 행여나 뒤질세라 하고 종종걸음들을 친다.
"어서 내립쇼. 너무 뒤에 떨어지면 어떡하실라구……."
털이는 조바심을 한다.
"뭘 그 동안이 얼마나 되겠니."
주만은 태연하다. 그들이 배에서 내렸을 때엔, 왕을 모신 옥교는 동쪽 사다리 위에 오르시어 자하문 안으로 납시었다. 일행들은 걸어서 왕의 뒤를 모시었다.
주만은 배 안에서 머뭇거릴 때와는 딴판으로 질질 끌리는 치마 뒷자락을 돌아다볼 생각도 않고 나는 듯이 돌사다리를 오른다. 털이는 방구리 같은 키를 꼬불거리며 아가씨의 치마 뒷자락을 추켜 들고 쌔근쌔근 뒤를 따랐다.
자하문을 들어서자 그렇게 서둘 필요는 없었다. 왕은 옥교에서 내리시어 일행을 데리시고 다보탑 앞에 걸음을 멈추신 까닭이다. 주만과 털이는 쉽사리 그 행렬에 끼일 수 있었다.
주만은 다보탑을 한번 보고 제 눈을 의심 않을 수 없었다.
저것이 돌로 된 것일까. 저것이 단단하고 육중한 돌로 된 것일까. 돌을 어떻게 다루었으면 저다지도 어여쁘고 아름답고 빼어나고 의젓하고 공교롭게 지어 낼 수 있었을꼬.
네 귀에 웅크리고 앉은 사자 네 마리는 당장 갈기를 털고 일어날 것만 같다. 사자등 너머로 자그마한 예쁜 돌층층대가 있고 그 층층대를 눈으로 더듬어 올라가면 편편한 바닥이 되는데 그 한복판에는 위층을 떠받치는 중심기둥이 있고 네 귀에도 병풍을 접쳐 놓은 듯한 돌기둥이 또한 섰는데 그 기둥들이 둘째 층 밑바닥을 고인 어름에는 나무를 가지고도 그렇게 곱게 깎음질을 해내기 어려울 듯한 소로가 튼튼하게 아름답게 손바닥을 벌렸다. 첫 층의 지붕엔 둘째 층의 네모난 돌난간이 둘리어 쟁반 모양 같은 둘째 층 지붕을 받들었고, 셋째 층에는 난간이 팔모가 지고 기둥도 여덟 개가 되어 세상에도 진기한 꽃잎을 수놓은 역시 팔모진 지붕을 떠 이고 있다.
주만의 눈길은 그 뛰어난 솜씨의 자국자국을 샅샅이 뒤지는 듯이 치훑고 내리훑었다. 보면 볼수록 새로운 감흥을 자아낸다.
"절묘, 절묘." 마침내 왕께서 먼저 절찬하셨다.
"그 돌 다루는 재주는 참으로 하늘이 내신가 하옵니다."
왕의 곁에 모셨던 이손 유종이 아뢰었다. 너그러운 뺨에 자가 넘는 흰 수염이 은사실같이 늘어졌다.
"경신읍귀의 재화라 함은 이런 재주를 이름인가 합니다."
고자처럼 노리캥캥하고 수염도 없이 맹숭맹숭한 시중(侍中) 금지(金旨)가 한문 문자를 써가며 맞방망이를 올린다.
"저 탑이 분명히 돌로 지은 것일까. 바로 밀가루나 떡고물 반죽이라면 몰라도."
만월부인께서도 감탄하신다.
"마마의 비유가 그럴듯하오마는 떡가루를 가지고도 마마는 저렇게 빚어 내기 어려울 것 같소." 하고 왕은 웃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