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003

화랑을 쫓아다니다가 입산한 지 얼마 안 되는 '빨갱이'가 그 별명마따나 다혈질의 시뻘건 얼굴을 더욱 붉히며 자리를 헤치고 나앉는다.
말하기 전부터 목줄대에 핏대가 선다.
"우리 신라에도 사람이 없지 않은데 도대체 그런 막중 대사를 부여놈 따위에게 맡기는 게 틀렸단 말이오. 그래 우리 신라에는 석수장이가 한 놈도 없단 말이오. 아무리 한들 그래 그까짓 부여놈 재주를 못 당한단 말이오. 꾀죄죄한 잔손질은 혹 빠질는지 모르지만 큰 솜씨야 어디 어림 반푼 어치나 있단 말이오. 정말 이 서라벌 석수들이 적이 핏기나 있는 놈들 같으면 목을 따고 죽어 마땅하지. 그놈들도 다 죽었지그려. 그런 대공을 시골뜨기 석수에게 빼앗기고 열손 재배하고 가만히들 있으니. 에이 못생긴 것들, 다 죽은 것들……."
팔을 부르걷고 분개한다.
"아니 여보, 그 말은 그 부여 석수장이를 욕하는 말이오, 또는 우리 신라 석수장이를 욕하는 말이오. 말이란 종을 잡을 수 있게 해야지."
본래부터 빨갱이의 화랑 냄새를 싫어하는 떠는턱이 한마디 따진다.
"누가 말시비를 캐자는 거요. 이를테면 그렇단 말이지. 그래, 신라에는 석수장이가 씨가 말랐단 말이오." 빨갱이는 빨근하며 뇌까린다.
"원, 부여는 신라 땅이 아닌가베. 원 내가 석수장이를 만든단 말인가. 씨가 마르고 안 마른 걸 내가 어찌 알꼬."
"이건 말책만 잡으면 제일이오. 아니 그래 그놈이 제 재주만 믿고 거드름을 피는 게 장실은 아니꼽지 않단 말이오. 능라주단으로 제 처소를 꾸미고 진수성찬에 엇들고 받드니 아주 제가 젠체하고 이건 누구를 보고 인사 한마디를 할 줄 아나, 혹 수작을 붙여 보아도 대꾸는 않고 고개만 끄덕끄덕하고 마니 그래 그놈이 벙어리란 말이요, 먹쟁이란 말이오. 도대체 제 명색이 뭐란 말이오. 한금해야 돌 쪼는 석수장이 아니오. 원 아니꼽살스럽게."
"그건 또 딴말이지."
"아니 그래 장실은 끝끝내 남의 비윗장만 흔들어 놓을 작정이오. 딴말이 무슨 딴말이오. 다 한말이지. 아무튼 일을 해야 공사가 끝이 나든지 재랄을 하든지 할 것 아니오. 이건 멀거니 탑 위에 앉아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니 탑을 쌓는 게 아니라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잡으려는 건지. 이걸 나날이 쳐다보고 오늘이나 얼마쯤 되었나, 내일이나 끝이 나려나 하는 우리 불국사 승려야말로 불쌍하지 않소. 그놈이 아마 고량진미에 배때기가 부르고 대우가 융숭하니까 제 고장에 돌아가기가 싫어서 일부러 공사를 질질 끌기만 하는 거야."
"처음 올 적에는 밥 한 그릇씩 그냥 때려눕히더니만 인젠 아주 귀골이 됩셨는지 밥은 한 술밖에 안 뜨니……."
원주가 빈정거린다.
"흥, 배때기에 발기름이 오르면 고량진미도 보리겨떡만 못한 법이거든."
빨갱이가 또 개탄한다.
뭇입이 찧고 까부는 사이에 졸고만 있던 아상노장은 아까부터 코까지 드르렁드르렁 골다가 이때야 또 그 영채 도는 눈을 번쩍 떠서 원주를 본다.
"요새도 그렇게 공양을 자시지 않느냐." 위엄 있고도 간곡한 목소리다.
원주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굽실하며,
"예, 한술을 뜰까말까 하오이다."
아상노장은 눈을 더욱 크게 뜨며,
"응, 그것 안되었구나. 저번에도 일렀지만 별좌(반찬 맡은 중)를 신칙해서 찬 같은 것 정결스럽게 하느냐."
"녜에, 여러 번 신칙을 했습니다. 찬이야 있는 대로는 다 올리옵지요."
"각별 신칙하여라. 먼 데 손님이 병환이나 나시면 어떡하느냐. 알아듣느냐."
부드러우나마 꾸짖는 듯한 타이르는 듯한 말조다. 그리고 인제는 내 할 말은 다 했으니 너희들이야 얼마를 떠들든지 나는 자던 잠이나 자겠다는 듯이 다시 눈을 감아 버린다. 빨갱이와 원주는 못마땅한 듯이 고개를 외우시고 입을 삐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