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004

빨갱이는 끊어진 수작의 실마리를 찾으며 원주를 보고,
"참 언젠가 장실이 이야기한 것이지만 요즈막은 공양은 어데로 올린다누. 제 처소로 올리는가 또는 탑 위까지 모셔 올리는가."
빨갱이는 노장을 슬슬 곁눈질하고 깍듯이 위해 올리며 빈정빈정한다.
"단층만 쌓았을 적 말이지 인제야 탑 위로는 못 올리지. 벌써 두 층이나 쌓았으니까 무슨 주제로 그 꼭대기에서야 공양을 받겠다 하겠소. 아침 점심은 제 방으로 가져가고 저녁은 역시 일터로 가져간다오. 대중공양(중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밥 먹는 것)에나 한몫 끼었으면 좋으련마는 이건 밥 먹는 자리까지 일정하질 않으니 원 성가시어."
하다가 아상노장을 꺼리어 말소리를 낮춘다.
"우리끼리 말이지만 언제든지 아침상은 그대로 나온대. 한나절까지 뒤여진 듯이 자빠져 있다가 오시가 훨씬 지난 뒤에야 겨우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개울에 나가 늘어지게 세수를 하고 목욕을 하고 제 방에 돌아와서는 점심을 뜨는 둥 만 둥 일터로 올라간대. 일터에 올라가서는 그대로 꿇어앉아서 그래도 잠이 미흡한지 꾸벅꾸벅 졸기만 하고 저녁때가 되어도 내려올 줄을 모르니 부득이 저녁상을 일터로 가져갈 수밖에 있소. 공양을 보고도 내려오지를 않고 손짓으로 탑 아래 두라는 뜻만 보인다오. 상이 났는가 하고 몇 번을 가보아도 상이 그대로 있다는구려. 열 나절이나 스무 나절이나 제 한이 차야 부시시 내려와서 몇 술을 뜨고 또 올라간대. 그러니 일껏 지은 더운 밥이 다 식고 국과 찬은 먼지투성이가 되고……."
"제 고장 있을 때 식은 밥 먹던 것이 버릇이 되어서 더운 밥을 먹으면 혓바닥이 부르터 오르는 게지." 빨갱이가 혀를 찬다.
"다 어두운 뒤에 또 올라가면 무슨 일을 할 거냐 말야, 흥."
원주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기 말이지. 그래 탑 위에 올라가면 역시 등신같이 앉아만 있다오. 밤이 이슥하도록 내려올 생각도 않고 어느 틈에 제 방에 내려와서 자는지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는밖에."
"그러면 언제 일은 한다는 말이오."
떠는턱이 묻는다.
"글쎄 그게 별판이야. 그래도 그 잔손질 많은 다보탑을 끝내고 석가탑을 시작한 것만 별판이지. 삼 년이 아니라 삼십 년이 걸려도!"
"그것 참 불가사의로군. 이녁들 말 같을 지경이면 그야말로 그 사람이 신통력을 가진 게로구려. 일하는 낌새도 없는데 세상에도 진기한 탑이 이루어지니."
떠는턱이 또 말에 티를 넣었다.
"그러면 내가 거짓말을 한단 말이오." 원주는 그 사나운 눈알을 흘긴다.
"이 좌중에 물어 보시오. 요지막에 그 작자의 일하는 걸 본 사람이 있나 없나."
"어 그렇게 진심을 내지 마시기오. 일하는 싹도 없는데 일이 되니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닌가베. 딴은 나도 일하는 걸 보지는 못했으니."
"이상은 한 노릇이야. 우리도 그 석수가 탑 위에 앉고 서고 하는 건 봤지만 손대는 것은 못 보았는걸."
누가 맞장구를 친다. 좌중도 그렇다는 듯이 고개들을 끄덕인다.
"저는 여러 번 봤어요."
먼발치에 앉아 있던 어린 사미 하나가 말참례를 한다.
"오, 차돌이냐. 참 너는 잘 알겠구나. 그 방에서 시중을 드는 터이니깐. 그래 그 어른이 어느 때 일을 하시던."
떠는턱은 차돌의 말에 옳다구나 하는 듯이 반색을 한다.
파일을 잘 못 쉬는 분풀이로 부여 석공에게 원정이 가게 되고, 원정 끝에 그 인격과 행동까지 티를 뜯고, 나중에는 애당초에 일은 손에도 대지를 않은 것처럼 비난의 화살이 날아,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밤 가는 줄도 몰랐다.
우 하고 토함산 기슭을 스쳐 내려오는 산바람은 큰방 장지를 흔들고 첫여름의 눅눅한 풀 향기를 들이친다.
우울과 불평과 원망에 어리인 방 안의 무거운 공기도 이 물처럼 흘러 들어오는 밤바람에 얼마쯤 완화된 듯하였다.
추녀 끝에 달린 풍경이 떵그렁떵그렁 운다.
꼬끼요, 아랫마을에서 첫 홰를 치는 닭소리가 그윽이 들려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