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002

불국사 중들은 저녁 불공을 마쳤으니 제각기 제 처소로 돌아가도 좋으련마는 그들의 발길은 의논이나 한 듯이 큰방으로 하나씩 둘씩 모여들었다.
풀기 하나 없는 그들은 주지 아상노장을 중심으로 한 겹 에워싸듯 둘러앉는다.
그들은 슬금슬금 노장의 기색을 살피며 무슨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듯.
그러나 아상노장은 감중련하고 그린 듯이 앉았을 뿐이요, 이가 빠져서 합죽하게 다문 입은 열릴 것 같지도 않다.
노장의 눈치를 보다가 지친 그들은 인제 저희들끼리 서로서로 눈치를 바라본다. 다 같이 제 흉중에 먹은 마음을 누가 활활 속시원하게 직설거를 해줄까 하고 서로 찾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입을 벌리는 사람은 없었다.
한동안 답답한 침묵이 계속되었다.
누구인지 휘 하고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 '휘유' 소리가 무슨 군호 모양으로 여기저기에서 반향이 일어나고, 어떤 이는 제법 일장 설법이나 할 듯이 칵 하고 큰기침까지 하였다.
마침내 말문은 터졌다.
"흥, 작년 파일도 그냥 지내고……." 누구인지 혼자말같이 중얼거린다.
"작년뿐인가, 재작년 파일도 개 보름 쇠듯 안 했는가베!"
중늙은이 중 하나가 뒤받는다. 나이는 한 오십 가량밖에 되지 않았으나 겉늙어서 뺨은 살 하나 없이 홀쭉 빨았고 중풍증 탓인지 또는 신경질 탓인지 뾰쪽하게 내민 턱을 덜덜 떠는데 목청만은 쨍쨍하게 쇠되다.
"금년에는 꼭 공사를 끝내고 낙성 겸 굉장하게 파일을 지낼까 했더니 젠장맞을 그 원수엣놈의 탑이……."
구레나룻 자리가 새파란 이 절의 원주(살림 맡은 중)가 불쑥 이런 말을 하다가, 제 말씨가 너무 사나운 데 스스로 주춤하고, 말은 중동무이를 하였으나마, 그 부리부리한 눈방울을 불평스러운 듯이 구을린다.
아상노장은 조는 듯하던 눈을 번쩍 떴다. 침같이 숭숭한 하얗게 센 눈썹 밑에서 그 눈은 이상한 광채를 발한다. 입을 놀리던 중들은 움찔하였으나 노장의 눈은 스르르 다시 감기고 말았다.
"그야 그렇게 말할 건 아냐. 어느 건 공든 탑이라고 그야 공이야 들지. 그렇지만 너무 오래란 말이야, 너무 오래야. 벌써 삼 년의 세월이 걸리지 않았나. 삼 년, 삼 년이면 일 년이 삼백육십 일이라, 가만있자 날수로 치면 천 날이 넘지 않나베. 에이 참 날짜로 따져 보니 엄청나군, 엄청나."
'떠는턱'은 뼈만 남은 앙살한 손가락을 꼽아 가며 한바탕 늘어놓는다.
"삼 년, 흥, 몇 석삼 년이 걸릴지……."
누구인지 곱씹는다.
"그게 무슨 말인가. 아예 그런 말일랑 입 밖에도 내지 말게. 삼 년, 삼 년이 셋씩 걸리면 어떡하란 말인고. 우리는 말라죽으란 말인가."
떠는턱은 손을 쩔레쩔레 흔들며 펄쩍 뛴다.
"뚱뚱보는 말라깽이 되고, 말라깽이는 말라죽고, 킥킥."
어디서인지 웃음 소리가 터진다.
떠는턱의 옴팡한 눈엔 대번에 쌍심지가 선다. 그리고 웃음 터진 곳을 노려보며,
"오 이놈, 네놈은 살푸덤이가 얼마나 붙었다고. 그래 석삼 년씩 굶어 봐라. 산돼지같이 살이 더 찔 테니."
"그러구말구. '장실' 말씀이 옳다뿐이오. 다 이를 말이오……."
장실(丈室)이란 중들끼리 서로 위해 부르는 칭호다.
아까 말실수로 무참했던 원주가 기회를 얻은 듯이 떠는턱의 역성을 드는 척하면서 쏟아 놓기 시작한다.
"그러께 작년만 그냥 넘긴 것도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워낙 대공이라 이태쯤 걸리는 건 용혹무괴로되, 금년 파일까지도 끝을 못 내다니. 원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노라리야 노라리. 굼벵이가 쌓아도 천 날을 쌓으면 열층탑이라도 열은 쌓았을 것 아니냐 말야……."
말씨는 점점 우락부락해 간다.
"자 이건 역군일세 뭘세, 밥을 몇 솥을 쪄내도 금세금세 없어지고 들어오는 게 뭐 있느냐 말야. 대공을 끝내기 전이라 해서, 거둥 한번이 계신가, 대갓집에서 어엿한 행차가 있는가. 여느 집 재 올리는 것마저 절금이니 대관절 우리네는 뭘 먹고 살란 말이냐 말야."
하고 주먹으로 방바닥을 내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