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경덕왕 시절.
사월 초파일이 내일 모레. 서라벌 서울에는 석가 탄일 준비가 한창 바쁘다.
눌지왕 때부터 몰래몰래 이 나라에 스며들어 온 서천 서역국 부처님 도는 법흥왕 말엽 이차돈의 순교로 활짝 길이 열리고, 삼한 통일을 거쳐 성덕, 경덕에 이르자 그 찬란한 연꽃은 필 대로 피었다. 그 당시, 초파일이라면 설, 대보름, 팔월 한가위보담 더 큰 명절이었다.
파일놀이에 첫째가는 연등과 관등. 여느 집에서도 가지각색 등을 만들기에 야단법석이다. 모난 놈에 둥근 놈, 기름한 놈, 암팡진 놈, 장구 모양, 북 모양, 푸드득 나는 양의 봉황새, 엉금엉금 기는 양의 자라 남생이…….
도림의 대를 베어 곰살궂은 잔손질로 휘엉휘청 등틀을 휘어매고 선두리는 금당지에 은당지, 싸바르는 종이도 오색이 영롱하다.
여느 집도 이러하거니, 하물며 부처님을 모신 절들이랴. 대천세계를 밝게 밝게 비출 등 준비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축하식 봉행 절차와 법연 베풀 자리며 재 올릴 분별에 웬만한 절들은 벌써 여러 밤을 하얗게 밝히었다. 더구나 황룡사, 분황사, 백률사 같은 큰절들은 당일 거둥을 맞이할 차비에 더욱 공을 들이고 애를 썼다. 다른 절차는 다 그만두고라도 잠시 잠깐이나마 임금님 듭실 옥좌와 고관대작을 영접할 처소를 마련하기에 쩔쩔매었다. 비지땀들을 흘리고 쩔쩔매기는 하면서도 중들은 저절로 으쓱으쓱 어깻바람이 났다. 한 번 거둥에 쌀과 금과 은과 피륙이 산더미로 쏟아지는 까닭이다. 수가 좋으면 몇십 결 보전의 시주가 내리기도 한다. 부처님이 나셨으니 좋고 임금님이 오시니 좋고 그보다 더 좋기는 생기는 것이 많은 것이요, 음식이 질번질번하고 새옷을 갈아입게 되니 대덕 중덕의 웃두리중은 물론이요, 비구 사미 따위의 아랫두리까지 싱글벙글 한시절을 만난 셈이다.
그럴싸해서 그런지는 모르되 목탁과 경쇠 소리도 요새따라 더한층 우렁차게 활기를 띤 듯하다.
온 서라벌이 발칵 뒤집히도록 야단법석을 하는 가운데 오직 불국사만은 다 가무러진 잿불처럼 절 안이 괴괴하다.
불국사로 말하자면 신라에 크게 불법을 일으키신 제 이십삼대 법흥왕 시대의 초창으로 오늘날 장안에 즐비한 팔백팔 사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고찰이요, 초창 이후 여러 번 중창과 수리를 겪어 그 규모의 굉걸웅장한 품도 어느 절보담 못하지 않은 대찰이다. 더구나 서라벌의 제일 명산 토함산을 등진 그 절터는 비단 서울 근처뿐 아니라, 신라 전국을 뒤져 보아도 그런 절묘한 자리를 찾아내기는 그리 쉽지 않으리라. 뒤로는 빼어낸 봉우리를 느신하게 짊어지고, 좌우로는 울창한 송림을 슬며시 끌어당기며, 쪽으로 그린 듯한 호숫가에 넌지시 발을 내어밀었는데, 앞으론 광활한 평야가 휠쩍 열리어, 눈길 가는 곳 막힐 데 없으니 명찰에 절승까지 겸하였다 함은 이를 두고 이름이리라.
이만한 절이거니 파일 차림도 응당 굉장하련마는, 도무지 그런 기척을 찾으려야 찾을 수 없다.
밤이 되었건만, 다른 절처럼 이글이글 하늘을 태울 듯한 화톳불도 놓지 않았다. 펄렁거리는 횃불도 볼 수 없었다. 마지못해 단 듯한 불전의 추녀 끝에 두어 개 촛불이 가물거릴 뿐 온 절 안이 죽은 듯이 고요한데 이윽고 '큰방'에서 두런두런 인기척이 난다.
'큰방'이란 절에 무슨 일이 있으면 공사하는 처소요, 또 이 절 주지 아상(阿湘)노장의 거처하는 곳이다.


